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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Oct 23. 2020

나 좀 나갔다 올게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자책은 숨 쉬듯이 일어나고 우울과 괴로움은 켜켜이 스민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기 낳고 살찌는 사람들을 보고 내심 한심해했었는데 나도 다를  없다. 남들은 10킬로그램 이상을 가뿐히 빼고 사회로 복귀하는데 나만 가라앉다. 출산 이후 만나는 사람은 남편과 시어머니뿐이었다. 마음 편히 대화 나눌 대상도 없었다.


어느 날 새벽 수유 중에 아기가 온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잘 먹으려 하지 않길래 짜증을 겨우 참아가며 달래고 있었는데 남편은 나에게 버럭 하며 아기를 빼앗아갔다. 아기한테 성질내지 말라고 훈계를 늘어놓았다. 젖도 안 나오는 사람이 피곤을 이겨내며 죽을 둥 살 둥 젖먹이는 나한테 입찬소리만 해대니 기가 막혔다. 아주 대단히 훌륭한 말씀의 일장연설을 듣고 있자니 그저 목놓아 울고만 싶었다.


체력만 좀 더 있었어도 되받아 버럭 하고 싶었다.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살찌고 후줄근해져서 그런 것이다. 수유 때문에 앞섶은 항상 젖어있고 몸에선 젖 냄새가 풀풀 날린다. 이대로 평생 집에만 처박혀서 젖만 먹이다 끝날 것 같다. 자기혐오와 모성신화, 그리고 수유 스트레스까지 더해져서 딱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죽을 지경이었다.


나 좀 나갔다 올게.


다음날 아기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무작정 나왔다. 내가 없으면 아기가 굶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던 마음도 내려놓았다. 모유가 없으면 분유 먹이면 된다. 모유수유 예찬론을 펼치는 사람이 엄마 본인이 아니라면 그놈의 입을 당장이라도 찢어놓겠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 건 죄악이다.


3월 초 겨울바람이 아직도 싸늘할  아기를 낳았는데 어느새 벚꽃이 지고 있었다. 나한테만 시간이 멈췄다. 입고 나온 옷도 절에 맞지 않게 후줄근했다. 바람에 벚꽃잎은 흩날리고 수유복을 입고 아기 없이 덜렁 나온 나만 생뚱맞았다. 봄날 벚꽃길에서 가장 안 어울리는 존재로 서있었다. 바람이 눈을 때려 시렸다. 그래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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