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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Oct 23. 2020

머리카락이 비처럼 떨어지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기 100일 기념으로 촬영 소품을 대여해서 집에서 가족들을 불러 작게 잔치를 했다. 2월부터 심각해진 코로나 때문에 아기를 낳고 나서 처음으로 아이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기쁘게 손님을 치르고 나서 찍었던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내 머리숱이 휑하게 비어서 몹시도 초라해 보였다. 아기는 작고 너무나 귀여운데 나는 후줄근하다 못해 초라했다. 임신 중에 머리손질을 아예 못하기도 했었지만 산후탈모의 문제도 심각했다.


미용실에 갔다. 아기 낳은 지 백일 정도 지났다고 했더니 미용사가 지금은 뭘 해도 방법이 없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아직 수유 중이라 염색을 하지 않고 머리를 요령 있게 커트해서 볼륨감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머리 손질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두피에 닿지 않도록 머리 끝부분에 파마를 추가했다. 미용실에서 쓰는 헤어제품들이 전부 화학물질이라 모유를 통해 전달될 우려가 있다고 해서 많이 걱정했었다. 미용사는 염색만 피하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 안심시켜주었다. 2시간 정도 헤어스타일을 만들었다. 조금 덜 초라해 보였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공원에서 산책하면서 마주쳤던 아기 엄마들은 모두 날씬한 모습으로 유모차를 경쾌하게 끌었던 것만 같다. 나도 아이를 낳기만 하면 그렇게 되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기 까지만 해도 최소 4개월이었고, 산후 다이어트에 성공해야 했고, 코로나가 없어야 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이라 영영 그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해나가야 했다. 덜 초라해 보이기. 조금이라도 초라해 보이지 않으려고 미용실에서 비용을 지불했다. 날씬해져서 둔해 보이지 않으려고 요가원에 돈을 지불했다. 다 늘어진 수유티로 후줄근해 보이기 싫어서 온라인으로 새 옷도 주문했다. 전부 다 돈으로 해결이 되기만 한다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는데.





최대한 머리손질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열펌을 했다. 할머니들이 꼬불꼬불 파마를 왜 하는지 알 것 같조금은 슬펐다.


생각보다 퍼머의 효과는 강력해서 숭숭 구멍나는 헤어라인을 감춰주었다. 머리모양이 정돈되니 사람이 조금 말끔해보이는 기분이었다.




머리정돈을 하고 재취업 면접에서 합격했다. 아이를 낳고 집에서 시들어가는 게 온몸으로 슬퍼서 기회만 있으면 취업할 궁리를 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머리손질을 하기 전 면접에서는 모두 탈락. 머리손질 후에는 바로 합격했다. 아마 첫인상에서 느껴지는 일상의 고단함이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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