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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Oct 23. 2020

머리카락 요괴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남편하고 제대로 한판 려고 해도 체력이 필요했다. 지금의 상태로는 내가 무조건 질 것 같다. 싸울 시간이 있을 리가 있나. 머리만 갖다 대면 잠들어버리는 지경이다. 자 같은 꼴로 대거리를 해봤자 꼴만 더 우습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동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자주 가던 미용실 앞을 지나가기 부끄러워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갔다. 임신 중에 긴 머리가 번거로워 단발로 자른 것을 후회했다. 차라리 긴 머리였으면 질끈 동여매고 다닐 텐데 어정쩡한 단발머리는 행색을 더 추레하게 할 뿐이었다. 누가 알아볼 것도 아닌데도 고개를 푹 수그리고 후다닥 발길을 재촉했다.


머리손질을 대체 언제나 할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 백일 이전에는 아기와 최대 두 시간 이상 떨어져 있을 수가 없었다. 낮잠을 안 자는 아기인 데다 모유수유 중이었기 때문이다. 마음먹고 미용실을 간다면 적어도 세 시간은 기본일 텐데 그날이 오기는 할지 막막했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충분히 잘 수 있는 시간, 아기와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다.


덥수룩한 단발머리는 산후탈모와 겹쳐 나를 머리카락 뿜어내는 요괴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내가 지나는 곳마다 머리카락이 떨어져서 동선을 모두 확인할 수 있을 지경다. 아기 손아귀에 내 머리카락이 걸려있다. 손짓 한 번에 머리카락이 후두두둑 떨어져 내린다. 차라리 질끈 동여맬 수 있는 긴 머리였다면 나았을 것을. 어정쩡한 단발머리는 묶이지도 않아서 더 풀풀 날린다. 벚꽃 지는 계절에 머리카락도 후들후들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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