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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Nov 18. 2020

Y에게 (딸에게 쓰는 편지)

편린

오늘처럼 이대목동병원 앞을 지나는 날이면 그날의 공기마저 선명하게 떠오른단다. 1월의 한 겨울 폐 속까지 찬바람이 들어차는데도 나는 하나도 추운 줄을 몰랐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열이 펄펄 나던 너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었다. 집을 나서려고 준비하는 동안에도 너는 두 번이나 눈을 까뒤집으며 자지러지게 울더니, 아예 힘없이 늘어져 버렸었다. 그날 밤 흰자위가 뒤집히면서 발작하는 너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무력해서 울었었다. 그날따라 내가 저녁 모임으로 술을 마시고 들어가는 바람에 운전을 할 수가 없어서 네 엄마가 덜덜 떨며 운전을 해서 입원을 했었다.


그날 태어나 한 번도 본적 없는 얼굴로 다 늘어져 있는 너를 보면서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듯했었다. 의사가 체온을 재더니 얼음을 가득 채운 욕조에 너를 집어넣었었다. 차가운 얼음물에 담긴 너는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었다. 너도 울고 나도 울고 네 엄마도 서럽게 울었었다.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었다. 차가운 물에 너의 입술이 파랗게 변하는데도 열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서 얼음을 몇 번이나 채워 넣었었다. 얼마 전에 알아보니 지금은 의학이 더 발전해서 그렇게는 안 한다고 해서 안심했단다. 차가운 촉감이 너무 서럽고 슬퍼서 얼음물을 마주할 일이 생기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했단다. 그날이 너무 고통스러워 나는 지금도 얼음물이 싫단다.     


너는 그날부터 일주일을 꼬박 입원해 있었다. 이후로도 너는 아프기만 하면 고열과 열 경기를 앓았었다. 어린아이에게 열 경기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부모로서 그 처절함을 절실히 겪어내었었다. 어린 시절 열 경기 후유증으로 평생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때야 알았었다. 그날의 모든 일은 나에게는 부끄럽기만 했다. 자식을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그날에서야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었다. 내 품에서 울 힘도 없이 늘어져있는 너를 안고 내가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하늘에 간절히 빌고 또 빌었었다.      


내가 술을 끊은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자식을 키우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피눈물을 흘리며 다짐했었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니 말없이 늦게 들어온 내가 얼마나 무책임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득하구나. 나는 그날 이후로 선약 없는 저녁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구나. 내 가족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때에야 알게 되었었다. 이제야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구나. 너는 안 아팠으면 좋겠다. 너 대신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 그날 이후로 30년을 키우면서 이 마음은 변함이 없단다. 너는 나에게 항상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다. 네가 있었기에 내가 살아갈 수 있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결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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