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3 종로 3가 포장마차 거리

이제는 빼앗겨버린 나의 추억의 아지트

by 페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을 때면 언제든 찾아갔던 우리만의 투박하고 정겨운 아지트 "종로 3가 포차 거리"

이제는 사람들로 발 디딜 데가 없고 초저녁부터 만석이라 빈자리를 찾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종로 3가 포차 거리는 더 이상 우리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서운하다. 아니 너무 섭섭하다.




내가 서른 살 무렵이 됐을 때 익선동이라는 좁은 골목길에 하나 둘 예쁜 가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카페나 식당보다 동네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는 한옥집이 더 많았다.

좁은 골목길 사이에 피어난 장미 넝쿨이 예뻤고, 골목 어귀에 있는 낡고 오래된 담장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익선동에 흠뻑 빠진 우리는 그 뒤로도 두어 번 그곳을 찾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익선동 골목을 탐방하던 차에 어딘가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나는 걸 목격했다.

연기와 시끄러운 소음을 따라 들어선 그곳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골목 가득 노상을 펴놓고 앉아 고기를 구우며 이미 술 한잔 걸쳐서인지 벌겋게 상기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귀가 따가울만치 시끌벅적했다.

생갈매기살을 파는 오래된 고깃집들이 즐비해있던 그곳에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고기가 맛있었다기보다는 북적이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시원한 밤공기와 함께 기울이던 소주 한잔이 더 맛났던 것 같다.

그렇게 기분 좋게 술 한잔 하고 골목을 나서는데

이번엔 이게 또 무슨 일인가?

분명 낮에는 없었던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펼쳐져있었고 가게들은 이미 저마다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우리네 감성이네 여기!

그렇게 종로 3가에 푹 빠졌다.




금요일 퇴근 후,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종로 3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젊은 손님들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술을 마시는,

그러니까 적어도 서울에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 펼쳐지던 그곳이 썩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사실 포장마차는 모든 시스템이 불편하다.

카드로 결제하겠다는 말은 금기사항이었고, 물론 지금도 불가능하다.

그곳에서 위생을 논하는 건 반칙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편한 건 화장실...

종로 3가 포차 거리 초입에는 공중화장실이 하나 있지만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못 참겠을 땐 쿨하게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 카드를 찍고 지하철 대신 화장실을 이용하고 오기도 했다.

이게 바로 포장마차 단골의 노하우라고나 할까?




이렇게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 갑자기 젊은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익선동은 진즉 유명해졌지만 그나마 포장마차 거리는 지금처럼 붐비진 않았다.

하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을지로의 낡고 오래된 그리고 투박한 것들이 힙한 거라 칭해지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그렇게 몇 해가 지나니 자연스럽게 종로 3가 포차 거리마저 그들에게 잠식당하고 말았다.


왜 20대는 노포에 열광하는 걸까?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찾는 건지, 아니면 앞에 열거해둔 불편한 시스템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난 그저 일찍이 촌스러운 감성을 좋아했고 그래서 포장마차 특유의 분위기에 빠져 찾았던 건데,

아쉽고 또 아쉽다.


얼마 전 블로그 후기에서 포장마차 거리를 소개하며 덧붙인 한 줄이 인상 깊었다.

"포장마차에 가서 술은 많이 안 시키면서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눈치를 줍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리뷰였다.

소주 한 병 시켜놓고 국수 한 그릇, 계란말이 하나에 밤새는 줄 모르고 떠들었던 지난날의 추억이 아련하다.

내가 이러한데 원래 그곳을 찾았던 어르신들은 또 어떠할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쫓겨났을 단골손님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의 추억이 깃든 그곳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며, 이 또한 지나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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