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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Jan 09. 2024

내가 셋째가 낳고 싶어질 줄이야

번식의 본능과 현실 사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나야말로 망각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둘째를 갖자고 마음을 먹은 때였다. 첫째는 정말로 힘들게 낳았고 힘들게 키웠다. 그런데 첫째가 걸어 다니고 밥을 혼자 먹을 수 있을 때쯤, 첫째에게 아기의 냄새가 희미할 쯤부터 그 힘들었던 기억을 잃어버렸나 보다.


요즘은 확실히 아이를 하나 이상 낳는 경우가 드문 일이다. 내가 둘째를 가졌다는 일명 임밍아웃을 했을 때, 친정엄마한테 등짝부터 맞고 시작했다. 그러니 나만 망각의 동물인가 싶었다.


내 눈에 보이는 셋째맘들



나는 두 자녀지만 운 좋게 국공립 어린이집을 보내봐서 (어린이집 입소 순번은 다자녀 가정에게 우선순위로 돌아온다.) 자녀를 셋 둔, 일명 셋째맘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뭔가 여유가 있었다.


혹자들께서는 딱 들으면 그것이 경제적인 여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들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나면 평균 이상의 중산층이더라도, 입이 딱히 벌어질 정도의 엄청난 부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 부유한 사람들에게서 이상할 정도로 팍팍함이 느껴질 때가 있으니. 꼭 경제적인 이유가 반드시 마음 여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아이들 때문에 소비할 일이 많으니, 이들은 중고거래를 좋아하고 가성비 소비를 좋아한다. 태도는 아주 알뜰한데 얼굴 표정은 굉장히 여유롭다. 특히 막둥이인 셋째에 대한 태도는 도를 오래 닦은 산신령을 보는 듯하다. 나도 둘째까지 낳은 엄마라 첫째 때보다 둘째 육아가 더 여유롭게 받아들여지기는 하는 점에 이해하지만, 셋째에 대한 태도는 확실히 그 이상이다.


이들에게 어쩌다가 셋째를 가지셨냐고 물어보면 신기하게도 그들은 셋째를 강력하게 원해서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 하나 혹은 둘을 팍팍하게 키우는 내가 그들에게 “존경합니다. 대단하십니다.”를 연발할 때 그들은 하나같이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또 낳고 싶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걸요?



나는 당연히 손사래를 쳤다. 과연 내가 그러할까? 그럴 날은 절대로 오지 않을 거라 장담했다. 첫째 때는 “내 살점을 뜯어먹는 악마는 하나면 족하다.” 고 공공연히 말했지만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으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둘째를 출산하고 우리 부부는 바로 피임시술을 했다.



그런데 둘째가 서너 살쯤 되니 나는 또 망각의 동물이 되었다. 또 갓난쟁이들에게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네나 소아과에서 꼬물거리는 떡애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봤다. 내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나는 불똥이라도 튄 강아지처럼 고개를 털어냈다.


모유수유도 그러하지만, 모성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을 느낄 때는 아기의 냄새를 맡을 때이다. 갓난아기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기한테만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정수리와 발바닥에서 진하게 뿜어져 나오는 그 냄새다. 예전에 나도 첫째가 갓난쟁이였던 시절, 그 냄새 한번 맡아보고 싶다고 나를 붙잡는 생판 모르는 아줌마를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


나는 이제 이해한다. 그 묘하게 중독적인 향기는 뭐라 말로 표현을 못하겠으니.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그 냄새가 사라지는데 이게 뭐라고 우울한 기분까지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어쩌면 나도 예전 그 아줌마같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물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기 머리 냄새 한번 맡아볼 수 있냐고 말이다.



언젠가 침대에 누워 남편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셋째를 갖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서. 알고 보니 남편도 그러했다. 남편의 욕망이 더 강렬했다. 다만 자신이 아무리 도와줘도 결국 내가 가장 고생하는 구조라는 걸 남편은 잘 안다. 그러니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피임시술은 다시 원상복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셋째는 낳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걸까? 그 현실의 실체는 무엇인가? 경제적 이유라는 가장 보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자. 남편은 그저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외벌이라 둘 키우기도 빠듯하다. 엄마들끼리 모여서 하는 이야기 중에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말이 있다. 거기에 사교육은 이제 영유아부터 필수적인 분위기다. 그나마 내가 사교육을 좋아하지 않아 둘을 키우고 있는 것 같다.


그보다도 이제는 신체적인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는 30대 후반, 40대 출산도 드문 일이 아니지만 개인차가 있으니. 나는 감히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5년 전 둘째 출산 때도 건강 상의 이유로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해야 했다. 그때 이미 신체적 한계를 느끼고 이것이야 말로 내 인생 마지막 출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피임시술을 결심했다.


모든 출산은 변수가 늘 존재하기에 목숨을 걸고 하는 위험한 모험이다. 그렇기에 또 모험을 쉽게 꿈꾸기 쉬운 것 같다. 그런데 확률적으로 그런 위험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더 많아졌으니 결정은 더 쉽지 않다.



만약 우리가 망설이지 말고 몇 년 더 빨리 결혼을 결심했으면, 좀 더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면, 과연 다른 결정을 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생물으로서의 본능은 분명히 존재함을 느끼는 점은 분명하다. 자식은 하나보다 둘이 같이 노는 게 더 예뻐 보이고, 셋이 되면 얼마나 또 행복할까? 그런 그림을 나도 모르게 그리게 된다.


그보다도 이런 본성을 억제하며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지 나만 이런 걸 욕망이라고 정의하며 억누르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세상은 이렇게 변했을까?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고,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별로 없어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과 희망을 같이 이야기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젊음도 삶도 영원할 수 없기에. 이런 세상을 먼 훗날 그나마 바꿀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우리 아이들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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