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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입니다!

"작가님, 원고 마감입니다."

"앗, 뭐라고요? 저 아직 원고 다 못썼는데요?"

"그래서 말인데요, 계약은 무효입니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책을 내기로 계약했잖아요. 이렇게 계약서도 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그리고, 원고가 너무 미흡해요."

"안돼요, 난 책을 내야 한다고요? 계약했으면 끝까지 기다려 줘야지요"

"그럼 이만"

"안돼, 안된다고..."


화가 나서 일까? 온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많은 밤을 새운  뭐란 말인가?

원고 마감이라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어딨어. 안돼. 안된다고...


발악 발악 악을 쓰며 안타까운 상황을 마주하지 않으려 몸부림쳐보았지만, 내 몸은 생각처럼 앞으로 나가지도, 내 앞에서 냉정하게 돌아서는 편집장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원고 마감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으며 꺼이꺼이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황당한 순간을 맞이했다.


경직된 몸을 비틀자 어디선가 삐그덕 소리가 났다.

실눈을 뜨고 보니 웅웅 거리는 컴퓨터 본체 소리와, 환하게 켜져 있는 컴퓨터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금 눈을 감았다 떴다.

삐걱이는 소리는 의자에서 내 몸이 요동침에 따라 나는 소리였다. 멍하니 모니터를 보며 쓰다원고의 끝을 따라가니,

...................................................................!

키보드가 눌렸는지 점과 함께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의자 깊숙이 포개진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전 냉정하게 돌아서던 그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급히 주방으로 가 컵에 물을 따르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20분...

글을 쓰다가 잠이 들었나 보다. 의자 깊숙이 기대었더니 목이 뻐근하고, 어깨가 경직되어 있다. 두둑 소리를 내며 가볍게 몸을 풀고 나니 꿈을 꾼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휴~~~~~~~~~~~


긴 한숨을 쉬고 커피를 탄다.

얼음을 가득 넣어 시원한 라테를 한 모금 마신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글을 쓰다 깜빡 잠이든 모양이다. 출판 계약이 파기되는 안타까운 꿈이었다. 불길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디선가 낯설지 않은 풍경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스치는 생각을 애써 지우고 다시금 모니터 앞에 자리를 고쳐 잡고 앉는다.


어디까지 썼더라...

글을 쓰면서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부담을 갖고 있었나 보다. 늦어지는 원고에 출판사가 계약을 캔슬할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 꿈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번째 출판 계약은 소리 소문 없이 무산되었기에 적잖이 걱정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악몽을 꾸기도 하고, 원고를 마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순간들이었다. 신나게 원고를 쓰다가도 뇌리를 스치는 불안한 감정은 문득문득 올라왔다. 그 불안한 감정을 이겨내고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던 교정본이 이제 내 손을 떠났다.


책 표지까지 완성되고,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꿈에서 만났던 악몽과 같은 순간은 다행히 나를 비켜갔다. 교정 PDF는 인쇄소로 넘어갔다.

신난다고 "얏호"를 외쳐야 하는데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들여다본 원고 탓인지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 휑했다. 아니 찬바람이 심장을 자꾸 파고들었다.


2021년 2월 16일은 내가 처음으로 출판 계약하던 날이다. 그로부터 꼬박 8개월이 걸려 원고를 쓰고 편집을 거쳤다. 출간 기획서를 작성하던 시간을 더하면 열 달이다. 열 달이면 아이를 출산하는 기간과 같다. 아이를 출산한 것처럼 그렇게 책이 탄생하는구나! 다음 주에 책이 나온다는 얘기를 팀장님으로부터 들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 마음이 갈지자로 걷고 있다.


지난주 <내 책에 어떤 옷을 입힐까?> 고민하며 책 표지에 대해 브런치, sns, 페이스북에서 투표를 했었는데 마지막 4번 시안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마치 반장선거에 나가 몰표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많은 이들이 즐겁게 참여해 주었고, 댓글을 남겨주는 정성과, 분석까지 곁들여 주신 분들, 전화로 친히 자신이 뽑은 시안이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었다. 다들 코로나 19로 심심하던 터에 재미있는 숙제를 받아 든 아이처럼 즐거운 고민을 하며 표를 얹어 주었다. (투표에 참여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책 표지 정하는 일은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고, 많은 분의 성원에 힘입어 내 책의 옷이 만들어졌다. 처음 출간 과정은 안갯속이었는데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윤곽이 드러난다. 지난 7년간 두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오늘도 새벽을 맞이한다...


책 표지 펼침 시안_아직은 부끄러워 날개에 있는 내 얼굴을 펼치지는 못하겠다.


https://brunch.co.kr/@naarya/295



덧:)

많은 브런치 작가님들이 브런치 북 응모로 분주할 텐데 저처럼 악몽 겪지 마시고, 원고 마감 전 마무리 잘 되시길 응원합니다^^ 작가님에게 행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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