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생 K

일 벌레 X세대 K

인생의 오랜 경험을 책으로 엮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은 그저 욕심이었을까? 어두운 예배당에 앉아 가슴을 치며 울었다. 코를 훌쩍이며 울던 와중에도 섬광처럼 감은 눈 사이로 떠 오른 사람은 남편 K. 그의 재능을 묻어두고 살아야 했던 16년간의 결혼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 그의 삶이 연민으로 다가왔다. 느지막이 책을 쓰겠다고 꿈을 향해 달려가던 은주와는 대조적인 남편 K. 그의 이루지 못한 꿈이 감은 눈 사이로 섬광처럼 빛나며 그녀의 눈을 멀게 했다.


그렇다. 그녀는 그렇게 눈이 멀었다. 적어도 가엾은 가장, 남편으로부터 눈이 멀었다. 연민이 사무치도록 가슴을 파고들어 주르륵 흐르던 눈물은 통곡이 되어 예배당을 울려 퍼졌다. 남편의 인생이 참으로 안타까워 땅을 치고 울었다. 그녀는 신에게 질문했다.


"신이여, 내 사랑하는 아담을 만드신 당신이 그의 재능을 무엇보다 더 잘 알 텐데, 어찌하여 모른 척하나이까? 당신의 손에 빚어진 그의 재능을 이대로 모른 척한다는 것은 너무 괴롭고 힘이 듭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그를 도울 수 있을까요? 제발 뭐라고 말이라도 해보세요."

하늘에 대고 소리치며 따져 물었다. 하지만 아무런 답은 없다. 그저 훌쩍이는 그녀의 울음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뿐….


무엇이 그리 슬퍼서 울었을까? 꿈을 접고 살아야 했던 남편의 아픈 가슴이 느껴졌다. 이렇게 순응하며 살다가는 인생에 꽃 한번 피우지 못하고 사라져 갈 영혼이 될 참이다. 사라져 갈 영혼의 끈을 붙잡아야 했다. 눈물을 닦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무엇부터 해볼까? 질문은 해보나 마나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내로서의 자리가 이제 엄마라기보다 동반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이다. 남편이 당장 직장을 그만두면 그 가정은 폭삭 망한다. 당장 날아오는 카드값도, 집 담보 대출금 이자도, 세금고지서도, 아이들의 양육비조차도 감당할 수가 없다. 가장은 그런 존재다. 가족의 삶을 짊어지고 있는 생명줄 같은 존재 말이다.



아내 은주가 꿈을 꾸기 시작할 무렵 이유가 필요했다. 책을 쓸 이유 말이다. 아직 아이들이 한참 공부해야 할 나이고, 교육비도 제법 들어가는 때이지만 엄마가 일일이 손을 써야 할 시기는 지나고 있기에 동반자로서 남편의 무게를 나눠서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이유랄까? 아내로서가 아닌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위해서는 직장이 든든하던지 부캐로 자녀 교육비라도 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 출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출간 기획서 작성부터 꼼꼼히 배워보고 싶었다. 그렇게 책 쓰기 특강을 수강하고 작성한 출간 기획서를 처음 투고하던 때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남편 K의 예술적 본능을 알아본 아내 은주는 그 끼를 마음껏 펼치게 해주고 싶었다. 직장인이었던 남편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담담히 그려낼 목적이었는데, 운 좋게도 첫 작품 투고 후 출판사에서 러브콜이 왔다. 담당자와 미팅도 하고 출간일, 방향성을 논하며 그녀가 쓰고 싶은 이야기에 열중했다. 이야기의 끝은 남편이 퇴사하고 꿈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가제도 그럴듯했다. 남편 퇴사 프로젝트 <아내들이여, 남편을 직장에서 탈출시켜라>

참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환상만을 가지고 쓴 것은 아니다. 남편이 꿈을 펼쳐 날아오르는 것은 그녀의 진심이다. 진심을 알아준 출판사가 있어서 참 감사했고, 처음 출판사에 문을 두드린 것이 열매를 맺는다는 생각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했다. 책이 출간되면 부부가 나란히 <아침마당>에 출연해도 될 만큼 인생역전 아닌가.


원고의 방향성을 놓고 출판사와 타진하던 것이 2020년 2월.

모두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던… 바이러스의 공포… 코로나19.

자영업자들은 아연실색 무너졌고, 세상 부러운 건 월급쟁이다. 계획한 공연은 연일 취소 행진을 이어갔다. 예술가들은 다시금 쫄쫄 굶어야 했고, 직장인 연극을 준비하던 K도 연극 공연은 기약 없이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월급 밀리지 않는 곳이라면 온몸으로 버텨내야 했고, 퇴사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베짱이 기타 치는 소리에 불과했다. 출간해도 책이 팔리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상황에 남편의 퇴사로 밥 보다, 꿈을 좇는 삶을 살자고 옆구리 찌르는 아내 은주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줄 리가 없다. 그녀에게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즈음, 출판사와의 계약은 흐지부지 종지부를 찍었고, 남편에게 퇴사 이야기는 더 이상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남편의 꿈을 이루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좌절로 얼룩진 그녀와 다르게 남편 김준호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직장을 잘도 다닌다. 결국, 어깨에 얹어진 처자식이라는 무게 때문에 투쟁은커녕 왜 나만 죽도록 돈을 벌어야 하느냐고 말 한마디 던지지도 않는다.


출판사와의 구두 계약으로 단번에 로또를 잡은 듯 들떠있던 아내 은주와 달리 행운을 바라지 않는 남편 K는 당첨되지 못한 로또 용지를 찢어 버리듯 쉽게 마음을 버리고 용광로 같은 회사로 총총 기어들어 갔다. 73년생 K,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흔들림 없는 그의 헌신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이 책은 무미건조한 X세대인 40~50대, 가장이라고 하면 당연히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YOLO(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는 MZ(Millenials+generation Z) 세대가 X(X-generation) 세대의 무던하고도 무미건조한 삶을 손톱만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왜 그렇게 사느냐고 비판할 것이다.


이렇다 할 특징 없는 X세대인 40~50대는 디지털 세대에게서는 꼰대라 핀잔 듣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살아야 한다는 훈육 속에 살아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길을 잃어버린 X세대, 그들의 삶에 대해 말하고 싶다. 자유분방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물질적 경제적 풍요 속에 살았다고는 하나 이 또한 선택된 자들의 모습일 뿐 가난에서 벗어나기엔 역부족인 삶, 그중에서도 82년생 김지영처럼 사회에 공손하며 착하고 순한, 투쟁이라고는 1도 모르는 73년생 K 그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출판사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고 사는 이야기에 목말라 있을 단 1%의 사람들에게 한 모금 오아시스 같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꿈같은 삶을 바라는 그 1%를 찾아 아내 최은주는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