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회사에서 탈출시키는 방법이 있을까?
극단 오아시스 정기공연이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성황리에 끝났다. 강사, 자영업자, 회사원...... 김준호를 비롯하여 직장인으로 구성된 연극반이다. 각자 품고 있는 열정을 무대에서 아낌없이 토해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연극 평을 나누며 남편 K의 연기를 칭찬했다.
“여보, 내 눈에 정말 콩깍지가 쓰였나 봐”
무슨 소리냐는 듯이 아내 최은주를 바라본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당신 연기가 최고예요. 어쩜 그렇게 맛깔스럽게 연기할까?”
K는 엷은 미소를 띤다. 그러다 이내 얼굴이 움찔거리는 듯하더니 굳어지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휴~ 힘들다”
“뭐가요? 이번에 연극이 힘들었어요? 단원들하고 잘 안 맞아요?”
연거푸 질문을 쏟아낸다.
“아니 직장 말이야. 매일 늦은 시간까지 일해도 조직이 나아지는 건 없고, 더 성과를 내야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K는 긴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숨을 쉬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음을 그녀는 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점심시간을 빼고도 꼬박 13시간 이상 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아내 은주는 뭐라고 위로할 말이 없어 그대로 한마디 했다.
“아휴! 진짜, 당신을 회사에서 탈출시키고 싶다. 도대체 감옥도 아니고 당신이 잘하는 노래나 연기를 하면 신이 날 텐데......”
안타까움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언제 잠이 들었는지...... 나의 고민은 깊어졌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직장에 매여 있는 남편을 탈출시키기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가 남편 K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작가가 되어 K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탤런트 기질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K 또한 어릴 적부터 노래를 잘 불렀다. 어린 시절 시장에 가면 으레 꼬마 김준호의 노래를 들으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린 꼬마의 멋들어진 노래에 박수갈채와 간식, 동전을 덤으로 받았다. 아들이 노래에 재능을 보였지만 먹고살기 힘겨웠던 부모님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아버지가 가장으로 한창 일할 47세에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었고, 어머니가 한복을 지어 푼돈으로 삼 형제를 키워내셨다. 어느 날 이른 새벽, 화장실을 가려고 잠이 깬 중학생 아들은 어려운 상황에도 씩씩하던 어머니가 재봉틀 앞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가 흐느끼는 것을 본 후 차마 노래가 하고 싶다고, 꿈이 있다고 말할 수 없었고, 일찌감치 기술을 익혀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토록 어머니가 원하던 ‘월급쟁이’가 된 것이다.
K의 삶은 세상과의 타협에 익숙하다. 꿈을 위해 살고 싶다 말할 수 없어 평탄한 삶을 선택했다. 고된 일도 마다치 않고 직장에 순응했으며 가정이라는 울타리도 만들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에 두 아이를 외벌이로 키우는 일은 힘에 부쳤지만 임신으로 배부른 아내를 1시간 넘게 전철 타고 출, 퇴근하라는 것은 몹쓸 짓으로 여겼다. 두 아이 기저귀 값 번다며 공사장으로, 대리기사로 투잡 하며 가장의 역할을 억척스럽게 견뎌냈다.
방 세 칸 허름한 빌라 대출금을 거의 갚아 갈 즈음, 이제 나도 일 할 수 있으니 당신의 꿈을 찾으라고 연극반으로, 성가대로 등을 떠밀었다. K는 별 보며 출, 퇴근하는 힘든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았고, 직장인 연극대회에서 연기상을 타며 숨겨두었던 재능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아이들도 노래와 연기하는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아이들의 자랑으로 끝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녀에게 밀려왔다. 연극과 노래로는 먹고살 수 없으니 퇴직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겠노라고 했지만 퇴직까지 아직 10년이다. '꿈을 가슴에 묻고 살라니' 이 말을 더 이상 할 수가 없다.
"당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라고, 세상과 타협하며 잃어버린 세월, 당신의 꿈을 키워보라"는 희망의 말을 해 주고 싶다.
꿈을 좇는다는 건 직장을 포기해야만 가능할까?
2020년 2월 전국 동계올림픽 컬링 경기에서 부산 남자 일반부는 동메달을 수상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컬링팀은 낮에는 직장과 학교에 다니고, 밤에 운동을 병행하는 동호회 수준의 선수로 구성돼있다. 하루 채 2시간도 연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국대회 입상은 대단한 성과다. (국제신문 2020.02.13 이지원 기자)
'어떻게 그들은 전문 실업팀이 아님에도 입상할 수 있었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수입을 얻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도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꾸준한 노력이 있다면 그 또한 가치 있는 삶이다. 그녀는 오늘도 남편의 직장 탈출을 꿈꾸며 이야기를 쓴다. 남편 K의 재능에 날개를 달아주고 픈 아내의 마음을 그 누가 알까? 가장은 원래 돈을 벌어야 한다고, 그래야 제 할 일 하는 거라고 으레 당연시되는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그녀는 몸을 웅크리며 작게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