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세 가장 장애인 되다
어느 새벽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몰래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보았다
중학생 K는 다짐했다.
어머니의 눈에 눈물 나는 일 없게
순응하며 살자고
캄캄한 밤,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도로 위를 달린다. 하나라도 더 실어야 한다는 업주의 강요를 거절할 수 없었다. 짐이 떨어질까 밧줄을 묶고 또 묶어 포박을 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도로를 졸음도 이기며 달려가지만, 조수석의 말단 직원은 피곤한지 눈치없이 코까지 골며 잔다.
차가 살짝 커브를 도는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물건이 밧줄을 비집고 도로 위로 떨어졌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상태가 어떤지 둘러볼 요량으로 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다. 풀린 밧줄 사이로 물건이 몇 개 떨어진 것이다. 밧줄을 다시 촘촘히 당겨 묶고 떨어진 물건을 주우려는 찰나 승용차가 아버지의 다리를 덮쳐 지나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운전자는 도로가 어두워 갓길에 세워진 차와 아버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 후 몇 번에 걸친 수술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절름발이 장애인이 되었다.
사고 보상은 고사하고 교통 보험조차 제대로 없었다. 하루 끼니 겨우 이어가던 때이니 교통 보험이라고는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세 아들 키우자니 생명보험 가입한 것도 사고 몇 달 전 해지한 상황이었다.
1년이 넘는 병원생활에 그동안 모아둔 돈은 바닥이 났고, 운전을 할 수 없게 되니 때 이른 퇴직을 맞이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어머니는 갑자기 시작된 아버지 병간호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피의자에게 보상하라고 따지지도, 사과조차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사고자는 몇 푼 벌금을 낸 것이 전부였다.
아버지 47세, 어머니 42세
K는 중학생이었다. 허리띠 졸라매는 생활은 중학생 때부터다. 없는 살림이었으나 부모님과 놀이공원도 가고 부모님 친구 분들과 어울려 여행을 가기도 했지만 아버지 사고 이후 친구도, 친척도 모두 외면했다.
아버지의 오랜 재활치료로 돈을 벌어온다거나 자식들의 듬직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심심풀이로 배워둔 재봉질로 한복을 지으며 집안 살림과 돈벌이를 도맡아 하는 가장이 되었다.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줄줄이 삼 형제의 뒷바라지는 힘에 부치기만 하다. 틈틈이 아버지의 병원 동행도 어머니의 몫이다. 사는 건지, 죽지 못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는 의자 위에 올라가 못질을 하려다가 넘어져 중풍까지 맞게 된다.
아버지 사고 후 겹친 중풍병은 가장의 몸을 더 쇠약하게 만들었다. 이제 아버지는 잠시도 어머니가 곁에 없을라치면 버럭 소리 지르기 다반사였고 부모님의 갈등은 심화되어 매일이 다툼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사고도 감당하기 힘드신 어머니에게 외삼촌의 사업도 부도를 맞았다.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직원들까지 빼돌리는 악재에 외삼촌은 알코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