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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사춘기 시절 개구쟁이였다. 세상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왜 우리 집만 이렇게 불행한 일들을 겪어야 하는지 화도 났다. 사춘기 반항조차도 사치일 뿐이라고 생각한 남편은 자신에게 부딪친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을 먼저 익혔다. 자신이 흥미 있어하는 일보다는 취업이 잘 되는 전기과에 진학했고, 착실하게 기술을 익혔다. 가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발명품을 만들어 큰 상도 받았다. 요즘 부모라면 자식의 특기에 눈을 떴을 법도 하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살기 빠듯했던 부모님에게는 아들의 노래는 잠시 위로가 되어주었고, 받아 든 상장은 땀 흘린 보람 거리일 뿐 그 이상의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직업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직업에 가치를 둔다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매는 또래들을 보면 한심해 보일뿐이다. 거기에다 배움으로 돈까지 들이다니 정말 비생산적인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군대도 병역특례업체를 선택했고 복무기간이 끝나는 동시 취업했다. 첫 월급을 받아 든 날 부모님을 위해 빨간 내복을 한 벌씩 샀고, 봉투에는 생활비에 보태라고 용돈도 두둑이 넣어드렸다. 이제 막내아들까지 월급쟁이가 되었으니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어머니 흘린 땀방울에도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착실히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순응하며 익혀야 한다. 한 계단씩 밝아 올라가며 승진하면 된다. 월급을 아껴서 저축도 해야 했다. 동기들보다 먼저 출근하는 일, 바닥 청소하는 일, 부품들을 챙기는 일 등 궂은일이라도 성실과 책임감이라면 그 누구보다 자신 있다. 사회 초년생이 뭘 알겠는가? 그저 시키는 일이나 잘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실수할 때도 있다. 잘 못할 때는 상사로부터 욕도 먹었다. 제품 이상으로 반품을 잔뜩 받아 올 때는 월급에서 까겠다는 협박도 받았다. 하지만 남편은 내 잘못이냐고? 화도 나고 욱한 마음이 들지언정 그만두지 않았다. 월급쟁이 노래를 부르며 월급 받아 들고 기뻐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순응하며 조직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남편의 유일한 낙은 기타 치며 노래 부르기다. 대학 다닐 때 기타가 갖고 싶어 낙원상가를 갔다. 반짝반짝 자개로 둘러싸인 기타가 눈에 띄어 물어보니 36만 원이라고 했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비용이 시급 1,200원 정도 할 때였으니 꼬박 2달은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다. 부모님께는 차마 갖고 싶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기타를 사기 위해 2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2달째 아르바이트 급여를 받자마자 낙원상가를 달려갔다. 기타는 삶의 위안이 되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는 삶의 무료함을 씻을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처지에 대한 불평도 사라졌다. 상사의 욕지거리가 귓속을 파고 들 때는 기타를 껴안고 Rock을 노래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참았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던가? 월급은 조금씩 올랐고, 저축은 한 푼 두 푼 모였다.      


통장에 잔고가 쌓여가도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 사고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투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혹시 부모님과 같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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