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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May 28. 2023

작은 땅의 야수들, 사라져 간 것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은 건 지난 1월이었다. 서울을 오가는 고속버스에서 침울한 기분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첫 장의 문장들이 아름다워서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지만, 읽는 동안 조바심이 나서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았다. 1월 내내 붙들고 기어이 읽어내고야 말았다는 느낌으로 책의 마지막장을 넘겼다. 격동의 시기를 살아낸 인물들의 삶을 한발 한발 느린 걸음으로 따라가야 하는 전개가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만큼 여운이 길었다. 좋은 소설은 책을 덮고 나서도 인물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거칠지만 진실한 영혼


작은 땅에 야수들이 살았다. 거칠지만 진실한 영혼의 야수들이.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렇다. 그들은 흉포한 세월 속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살았다. 옥희, 정호, 은실, 명보... 그들은 어쩌면 우리가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유혹이나 욕망과 타협하지 않고, 사랑에 진실하고, 자기만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의 상상력은 낯설지 않고 친숙한 것들 사이에서
계속 순환하며 흘러갔다.
말하자면 강물보다는 샘 같았고,
특히나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할수록 그랬다. 


호랑이는 숨지 않고 자신을 드러낸다. 힘이 있어도 돌아설 줄 안다. 그들은 호랑이와 닮았다. 이 땅에서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면서도 이 땅에 살아 숨 쉬던 정신의 상징이었던 호랑이. 하얗게 뒤덮인 산속에서 호랑이와 남경수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프롤로그는 우리가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될 야수들을 예고하는 것 같다. 


이 땅에 호랑이가 사라질 때쯤 그들도 함께 사라졌다. 그게 우리의 역사다. 



사라져 간 것들


작은 땅의 야수들이 긴 여운을 갖는 이유는 '사라져 간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는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이 있고, 결국은 살아남는 인물들이 있다. 소설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보다는 욕망을, 진실보다는 실리와 이익을 추구하며 그것을 정당화하는 인물들. 그들은 끝까지 무사하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라져 간 정신과 믿음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을 하고, 사랑에 진실하고, 그 사랑의 진실함을 믿는 것... 그런 것들. 


삶은 견딜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에.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슬프도록 아름다운 수미쌍관에 감탄하게 된다. 살게 해 주었던 것이 죽게 하는 것이 되고, 헤어지게 한 것이 다시 만나지게 하는 것이 되어 쓰리고 아픈 역사 속에서 돌고 또 돌아 어긋났다가 다시 맞물리기를 반복한다. 


당시의 야마다는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바뀌리라는 걸 짐작조차 못 했지만,
그 이후 일어났던 모든 일을 조화롭게 맞물리게 하는
어떤 절대적인 필연성이 수정처럼 또렷한 의식의 물결 속에서 그를 압도했다.
논리적으로든 비논리적으로든 발생했던 불가역적인 사건들,
그 모든 일이 그를 정확한 최종 목적지인 이곳에
안착시켜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서 부지런히 기록하고 남기고 싶은데 정신없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일들에 휩쓸려서 벌써 몇 개월이 지나버렸다. 그래도 이 책은 꼭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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