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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Apr 17. 2023

인간실격, 지구세계의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인간은 알기 힘들어


어쩌면 나는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말과 행동을 나로서는 언제 어떻게 하는 게 알맞은 것인지 늘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구의 사람들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모든 것들을 나는 새롭게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한다는 느낌 때문에 어릴 때부터 심적으로 늘 지쳐있었다. 그래서 요조가 유년시절부터 느껴온 다른 인간세계와의 단절감이 이해가 됐다. 이 단절감 또는 소외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같은 영혼이 가끔 혼자 지구에 뚝 떨어진 걸까.


그러나 저는 아버지 어머니조차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에게 호소한다. 저는 그런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걸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뜻을 알기 힘든 말을 하고, 말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을까 싶어지면 한층 더 복잡한 언어의 세계가 펼쳐지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어차피 예상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난해한 인간들과의 대화가 어려웠던 요조는 엉뚱한 소리나 해대는 광대가 되기로 했고, 나는 같은 이유로 입을 꾹 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유년시절 요조의 혼란한 정서가 어린 시절의 나와 닮아서 책을 읽는 내내 요조가 참 안쓰러웠다. 자기가 생각한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어른들에게 자신이 아닌 자신의 평가를 들어야 하는 상황들도.


그래도 어린 요조는 부유한 집안환경과 익살을 방패 삼아 안전하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다케이치가 요조의 광대노릇을 간파하는 순간, 요조의 유년시절은 끝이 난다.



기댈 곳이 필요해


"일부러 그런 거지?"


다케이치의 말에 요조는 공포를 느낀다. 애써 쌓아 올린 익살이라는 방공호가 무너지려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요조는 애써 그 방공호를 유지해보려 하지만,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하면서 나태해지고, 금전적으로 어려워진 후부터는 급격히 방탕해져 간다. 호리키라는 친구로부터 알게 된 술, 매춘, 전당포, 좌익사상이 새로운 방공호로 세워지는 시기다. 사랑과 지지가 충분하지는 못해도 가족이라는 존재,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익숙한 집이라는 공간, 생활에 필요한 금전적인 지원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거다. 요조에게는 안전한 곳이 필요했다.


술, 담배, 창녀, 그런 것들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상당히 괜찮은 수단이라는 사실을 저도 이윽고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마담은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라고 말한다. 요조가 세상에 대한 공포와 외로움으로 괴로워할 때 돌아갈 안전한 곳이 되어주지 못해서였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요조가 혼자서 방황하지 않도록 가족과 집이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약한 내면을 이해하기에 혼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요조가 마냥 한심하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이 개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예전보다는 다소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조도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나가는 법을 배워간다. 호리키의 말에 대한 반발로 세상이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세상에 대한 공포가 조금 누그러진다. 그러나 '개인'이야말로 실은 더욱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자격


요조는 한 유부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은 후 정말로 기댈 곳 없이 홀로 남겨진다. 그런 요조가 찾아다닌 것은 여성들, 그리고 술과 마약이었다. 마음을 잡고 성실하게 지내던 시절도 있었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아내를 지키지도 못하고, 맞서 싸우거나,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또다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으로 이어져 결국 가족과 친구에 의해 정신병동에 갇히게 된다. 요조는 스스로를 '인간실격'이라 선고한다.


호리키는 내심 저를 제대로 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리키가 저를 그렇게 보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 저는 옛날부터 인간 자격이 없는 어린아이였던 것입니다.


인간실격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자전적 경험들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요조가 작가의 처절한 내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어쩌면 요조로 대변되는 극단적 회피형 인간의 자기변명이ㄷ. 여러 번에 걸친 자살시도,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 여성편력... 스스로의 나약함과 나태함을 작가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태의 가루타'라는 작품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일하지 않는 자에겐 아무런 권리가 없다. 인간실격이다.'라고 쓴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미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을 쓰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훨씬 전부터 스스로를 '인간실격'으로 평가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작가는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그 역시 '인간실격'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하지만 인간의 자격은 뭘까? 누군가에게 '인간실격'이라는 선고를 내린다면 다자이 오사무나 요조가 아니라 한 외로운 영혼을 보살피지도, 위로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은 가족과 친구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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