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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Jun 11. 2023

나무수업, 서로 의지하는 세상


나무수업 '책 정보'

분류 : 인문, 과학

저자 : 페터 볼레벤(Peter Wholleben)

옮긴 이 : 장혜경

출판사 : 위즈덤 하우스


페터볼레벤에 대하여...

1964년생. 2006년 친환경적 산림경영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휨멜조합의 산림경영지도원이 되었다. 농약도 기계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산림을 관리한다. 원시림 회복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저자의 다른 책으로 '숲, 다시 보기를 권함'이 있다.



숲과 나무, 그리고 돌봄


나무에 의지하고 또 나무가 의지하는 숲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무수업'은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너도밤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익숙한 나무들의 조용하고 느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래된 숲 속에서 나도 살고 싶다.


모든 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 전부가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주어야 하는 소중한 공동체의 자산이다.... 한 나무의 삶은 그것을 둘러싼 숲의 삶만큼만 건강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삶은 사람의 삶을 닮았다. 아니, 사람이 닮고 싶은 삶을 산다. 독립된 개체이면서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를 돌본다. 여러 생명들이 모여서 각자가 살아갈 길을 찾아간다. 절망하지 않고, 쓰러지면 다시 시작하고,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에도 아무런 말없이 견디고 견디다가 기회가 오면 힘차게 뻗어나간다. 나무들의 시간은 우리 인간이 감히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나무가 오래오래 살려면 느림은 필수 덕목이다.


나무를 이해하는 날이 올까? 아주 느리고 아주 오래 참아내는 나무의 삶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참을성 없이 수많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숲을 없애버렸다. 우리 주변의 숲은 패스트푸드를 먹고 빠르게 이동하는 지금의 우리들처럼 건강하지 않다. 밀집되어 있어도 서로의 삶을 돌보지 않고, 스스로조차 바로 서기 어렵다.


도시의 나무들은 거리의 아이들이다.... 거리의 아이들이 향기물질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이야기 내용이 그들의 거친 삶과 어울리는지 우리는 모를 일이다.


아기 너도밤나무는 엄마 너도밤나무 밑에서 몇 백 년이나 기회를 기다린다고 한다. 가지를 쭉쭉 뻗어나갈 기회를. 그러나 엄마 너도밤나무는 때가 될 때까지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아기나무를 보호한다.


긴장감이 높았던 한 아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아기 너도밤나무처럼 오랫동안 삶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 아주 오래된 원시림의 나무들처럼.


원시림은 걸어 다니기가 정말 편하다. 걷다가, 죽어 바닥에 쓰러진 굵은 나무줄기가 보이면 자연이 준 벤치로 삼아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숲에서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 인간이 평생을 사는 동안 이렇다 할 변화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다. 따라서 인공삼림에서 원시림으로 발전해 가는 보호구역은 자연에게는 본연의 모습을, 인간에게는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되돌려 줄 것이다.


그런 숲이 있던 시절의 인간들도 어쩌면 그러했다. 느리게, 인내를 발휘하고, 받아들이며, 나무의 삶을 함께 살았을 것이다. 내 주위에 심어진 나무들 - 외롭고, 연약해진 거리의 아이들 - 을 바라본다. 숲을 떠나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나란히 서 있는,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 그 나무들처럼 우리도 불안해졌나 보다.


여기 훔멜의 기후가 언젠가 스페인처럼 더워진다 해도 아마 나무의 대부분이 잘 버틸 것이다. 물론 조건이 있다. 나무를 함부로 베어 숲의 사회조직을 망치지 말아야 하며 나무들이 알아서 미기후를 조절할 수 있게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서로를 돌볼 수 있게 되면, 우리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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