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조림은 맛있다
'고등어조림을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고 영양사 면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요리엔 일절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요리는 복잡한 절차와 온갖 귀찮은 행위의 집합체다. 우선 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평소에 요리를 자주 하지 않다 보니 항상 집에 채소나 소스 등이 부족했다. 없는 재료는 사러 나가야 하니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요리가 필요한 그 순간에 당장 요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요리의 특징이다. 지갑을 들고 시장에 가는 것부터가 요리의 시작이니까.
재료를 다 준비하면 일일이 채소며 고기를 손질해야 하는 것도 성가시기 짝이 없는 데다, 채소를 썰고 물을 끓이고 그 사이에 양념장을 만들고 뚝딱뚝딱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우당탕탕 허둥지둥하고 있으니 피로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겨우 요리를 마치고 식사를 하고 난 후엔 전쟁의 잔해들을 '설거지'해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으니, 일단 최대한 간단하게 때우거나 외식을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내 생활이었다.
남편과 같이 살 때엔 복잡한 요리는 주로 남편이 하고 나는 간단한 김치찌개나 카레 같은 걸 만들었다. 아이를 키울 때는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가까이에 사는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간신히 아이의 끼니를 챙겨줄 수 있었다. 아이는 내가 차려주는 밥을 끼적거리면서도, 할머니밥은 와구와구 잘도 먹었다. 그냥 난 요리랑 안 맞는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고등어조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니!
아닌 게 아니라 요 몇 달간 나는 꽤나 요리 실력이 좋아졌다.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음식들을 차례차례 미션 클리어 하는 중이다. 며칠 전엔 갈비찜도 만들었다! 혼자 캄보디아 외곽의 작은 도시에 살게 되면서 요리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짬뽕과 마라탕도 만들어보고, 심지어 한국의 치킨이 그리워 먹방 ASMR을 아련하게 바라보다가 결국 후라이드 치킨도 바삭하게 튀겨냈다. 남편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거기서 요리도해?"라며 놀란다. 결혼 후 '나는 밥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열심히 세뇌시키며 당당히 살았는데, 이제 좀 제대로 밥한끼 차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30분간 침대를 뒹굴거리다가 집을 나와 시장으로 갔다. 무, 배추, 양배추, 고추, 계란 등을 사고 돌아와 얼음을 잔뜩 넣은 커피를 들이켰다. 조금 활기가 돌아서 집을 좀 정리하고, 시장에서 산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어쩐지 평소에 귀찮아서 미루던 공부도 집중이 잘됐다. 매일 마음만 먹고 하지 않던 요가도 가뿐히 하고 저녁에는 드디어 고등어조림을 만들었다.
한국마트에서 사 왔던 고등어를 씻어놓고, 무와 양파를 적당히 썰은 후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후추, 설탕, 맛술, 간 마늘 등을 넣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자주 요리를 했더니 냉장고와 양념소스들의 위치도 척척이고, 여유 있게 영화도 틀어놓았다. 무를 깔고 고등어를 올리고, 양파, 대파, 마늘, 고추를 넣고 양념장과 함께 40분간 푹 조린다. 고등어조림도 클리어.
오늘 어째서 모든 것이 순조로울까 생각해 보니 아침에 시장에 다녀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는 아침에 늑장을 부리게 마련이고, 아침부터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뒹굴다 보면 머리가 멍해져서 다음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귀찮아지고 그렇게 오후가 되면 슬슬 기분이 나빠지고 해야 할 일을 결국 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한다. 요리를 하기 위해 시장에 다녀오는 것은 어쩌면 일상의 선순환을 불러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리아의 나라'라는 책에 라오스 몽족 남자아이가 몽족의 전통음식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레시피는 생선요리를 하기 위해 강으로 낚시를 하러 나가는 것부터 시작된다. 요리는 하나의 음식을 위한 레시피를 넘어 생활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