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질문, 나만의 가치 있는 작물에 대하여...
조는 대고모로부터 플럼필드 저택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된다. 대저택과 저택에 딸린 농장을 관리하며 살기는 어려울 것이라 걱정하는 로리에게 조는 말한다.
우린 이윤이 많이 남는 작물을 기를 거야.
The crop we are going to raise is a profitable one.
조는 오랫동안 가난하고 외로운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고 꿈꿔왔다. 대고모의 유산으로 조는 마침내 꿈을 이루고 작은아씨들도 해피엔딩을 맞는다. 내가 좀 더 냉소적이었을 때는 이런 식의 결말에 입을 삐죽이곤 했다. 결국 유산을 받아서 잘 된 거네 뭐. 하지만 작은아씨들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니 조는 플럼필드 저택이 아니었어도 아마 똑같은 해피엔딩을 맞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라오스에서 10년 정도 지내면서 빈곤한 지역의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을 위한 학교를 짓고, 선생님들의 교육을 지원했다.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내내 나를 아리송하게 한 것은 학교교육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었다. 학교는 마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일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출석률과 진학률의 지표를 넘어선 의미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난한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는 것 그 자체가 삶을 개선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런 의문에 유의미한 답을 주는 일일까.
그것이 10여 년 전 이야기다. 그동안 나는 그 답을 찾기는커녕, 질문들조차 잊고 살았다. 나 혼자 생각이 너무 많은 것 아닐까 자책하기도 하고, 내 질문을 의아해하는 상사와 동료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지금은 나도 그들도 잘못이 아님을 이해해보고 있다. 다만 그 이후에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너무 깊이 묻어두고 돌보지 못한 것에 스스로에게 미안할 뿐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영어유치원부터 대학진학까지 고민이 많은 주변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여전히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나의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온 혼란함이다.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하고 절규하던 어린 우리는 무엇을 바꾸었을까. 마흔이 넘어도 여전히 이윤이 많이 남는, 가치 있는 작물이 무엇인지 헤매는 중이다.
조와 자매들은 십 대의 자신들이 꿈꾸던 천상의 성과는 조금 다르지만, 가장 자기 다운 모습을 지키며 성장했다. 한국의 아이들도, 라오스의 아이들도 각자 자기만의 성을 완성해 나가는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필요했을 가르침이었다.
이제부터 마무리하지 못한 이야기를 다시 써보려고 한다. 나에겐 끝내야 할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그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앞으로 내 삶에 가치 있는 작물로 자라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