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도 좋지만, 돈이 실용적이죠

열네 번째 질문, 이상과 현실에 대하여…

by 나작
집안 입장에선 명예도 매우 좋지만 돈이 실용적이죠.
Fame is a very good thing to have in the house, but cash is more convenient.


야심 차게 써낸 소설의 1/3을 쳐내고 가장 아끼는 부분을 뭉텅 잘라내는 조건으로 출판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는 가족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작가로서 작품을 지켜내는 것이 명예롭겠으나, 출판사의 입맛에 맞게 바꾸면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가족들은 각자의 관점대로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주고, 조는 과감히 수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간 소설은 뜻밖의 칭찬과 혹독한 혹평을 동시에 받는다. 조는 무엇이 옳은지 더욱 아리송해진다.


열네 번째 질문, 이상과 현실에 대하여…


이상과 현실의 중심을 잡기 어려울 때가 있다. 아직 확신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경험이 그만큼 쌓이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십여 년 전의 이야기다. 현장에서 국제개발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는 기회가 왔고, 일을 하는 동안 나는 꽤나 열정적이었다. 산적해 있는 현장의 문제들을 모아서 사무국에 보고하면서 개선점을 정리해서 인트라넷에 건의했다. 어떻게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이 진정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인가에 대해 한국인 현지인 가리지 않고 수시로 토론했다.


“이상적이고 이상하다.”


그 결과 내가 받은 평가는 이런 말이었다. 면전에서 들은 것은 아니고, 은근히(어쩌면 대놓고) 내 험담을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준 이는 사무국의 사업 담당 간사였다. 사무국을 총괄하는 국장이라는 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폭주하는 기관차’로 묘사했다. 각국의 프로젝트 매니저들이 모여 지부의 현황과 개선점을 발표하고 있을 때 본부 직원들을 모아 “저 사람들 말 들을 필요 없다”며 편 가르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나와 매일 소통하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간사는 국장이 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은 날 혼자 사무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울었다고 했다.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단체들은 한국에 본부를 두고 각 국가에 지부를 두어 운영한다. 하지만 내가 일했던 단체는 본부와 지부라는 표현은 상하관계를 나타내는 표현 같으니 사무국과 지부로 부르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선량한 의도를 가진 누군가의 의도가 관철된 것이겠지만, 실상은 엄격한 상하관계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 의견이 좋은 의견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부에서 일하는 매니저가 ‘감히’ 의견을 낸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것을 꽤나 늦게 깨달았다. 눈치가 없는 덕분에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하면서 근무를 했지만, 그에 대한 험담은 사무국의 간사가 오롯이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국장은 비겁하게도 나에게는 한마디도 싫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는 1년 6개월 동안 우리 사업을 담당하던 간사는 6번 바뀌었고, 결국 나도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


한창 그곳에서 일할 때 모 기업에서 원하는 만큼 급여를 줄 테니(물론 무한정은 아니었지만) 와서 일해 달라는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 회사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인력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내가 3개월 정도 일한 경험이 있어서 제안한 것이었다. 적당히 그들이 제시한 금액으로만 따져도 그때 내가 용돈 수준으로 받는 금액의 5배 정도 됐다. 그들이 제시한 금액이 엄청 높은 것이 아니라, 그때 받고 있던 돈이 형편없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런데, 손이 덜덜 떨렸다. 그만큼 돈을 벌면 할 수 있을 일들이 머릿속을 마구 스쳐 지나갔다. “한 일이 년만이라도 일해요. 젊을 때 많이 벌어놔야지.”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매일 만나는 동료들과 내 손에 맡겨진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돈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나는 내내 나에게 돈이 없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던 시절에 또래보다 많은 돈을 벌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디론가 흐지부지 사라졌다. 나는 그저 그럭저럭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 의미 있는 활동에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미 있는 활동의 ’ 의미‘들이 점점 퇴색되어 가면서 ’ 소박‘한 생활도 견디기 어려워졌다. 한국에 와서 건강보험 자격득실 확인서를 발급받을 일이 있었는데, 그때 비로소 그동안의 내 위치를 선명하게 인식했다. 서류에 의하면 나는 거의 10여 년을 무직상태였다.


마흔이 넘어서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부자들이 썼다는 유명한 책들이었다. ‘부의 추월차선’이라든지, ‘백마장자 마인드’ 뭐 이런 책들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책들을 읽고 돈을 벌려고 노력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부자들은 내가 돈이 없는 이유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었다. 나는 당장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 봤다. 블로그, 스마트스토어, 디지털파일과 스톡이미지 판매, 유튜브까지. 나의 취향과 가치와 무관한 콘텐츠들을 무한 생산하면서 아주 조금의 수익을 얻기도 했지만, 지속해서 집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결국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이상도 현실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무리 정답 같아 보여도 내 것이 아니면 소용없다.


조는 평론가의 상반된 평가들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로 한다. “이 정도로 만족하고 준비가 됐을 때 다시 일어나 또 도전할 거야.” 조의 결심을 읽으며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이상적이고 이상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나만의 길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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