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중에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던 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엔 너무 멀게 느껴지고, 생활은 해야겠고. 마흔이 넘으면 진로 걱정 안 할 줄 알았는데, 여전하네."
언니가 말했다. 가깝게 지내는 사촌언니다. 스무 살에 언니는 음악을 했다. 그러다 공무원 준비를 하다 그만두고 사무직 업무를 전전했다. 언니는 여유가 있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20년째 '진로'를 고민하다가, 예매해 두었던 미셸 들라크루아 전시회를 관람하고, 언제나 그랬듯 서점에 들러 책들을 들춰보다가 헤어졌다.
언니와 나는 십여 년 전에 같이 드라마를 써보기로 했었다. 노트북을 들고 만나 등장인물들을 만들어 이름을 짓고, 어디에 살며 무엇을 할지 구상하고, 누구를 캐스팅할지 진지하게 논의하다가, 결국 첫 장면까지만 쓰고 흐지부지 되었다. 더 어렸을 때는 시트콤 대본을 쓰겠다고 공책에 가족들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끄적거리다가 엉뚱한 수다로 밤을 새우곤 했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그런 놀이(?)를 좋아했다.
우리에겐 사실 여유가 없었다. '생계'는 하고 싶은 일들을 '머나먼 꿈'으로 남게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살 수 있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들은 '그걸로 먹고살겠어?'라는 피드백을 받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이 아닌 것을 해도 먹고살기는 힘들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집은 다르다. 여기에는 여유가, 생각할 시간이 있다. 어쩌면 여윳돈도 있을지 모른다.
'맡겨진 소녀'에서, 가난한 집에서 부모에게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던 아이는 방학 동안 엄마의 일손을 덜기 위해 먼 친척 집에 맡겨진다. 아이는 그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유'를 감지하고, 곧바로 '여윳돈'과 연결 짓는다. 나는 종종 '여윳돈'이 있고, '생각할 시간'이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그랬다면 혹시, 나에게 좀 더 시간을 주고, 글을 썼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다만 이제는 그것이 '여윳돈'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시간은 여기에 주어져 있으니까, 지금은 지금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알았으니까. 진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진로를 열고 나아가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있잖아,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고 생각하자. 앞으로 30년, 40년은 더 살아야 할 텐데. 여태 어떻게 하지, 하다가 20년이 흘러버렸잖아."
미셸 들라크루아는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캔버스에 물감을 무작위로 짜서 문지르면서 말했다. "이 그림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몰라요." 어떤 소설가도 그랬었다. 어떤 소설을 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써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오늘도 해본다.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