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영역, 외로움을 견디는 힘

장강명, 먼저 온 미래 중에서

by 나작

장강명 작가가 쓴 ’ 먼저 온 미래‘를 읽었다. 알파고 이후의 바둑계의 혼란과 변화를 다층적으로 조사하고 해석한 후에 AI로 인해 인간의 활동이 어떻게 변화할지, 무엇을 미리 논의하고 대비해야 할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바둑에 대해 잘 몰라서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인공지능으로 인해 바둑계는 폭탄을 맞고 여기저기 터진 곳을 겨우 메워 버티고 있는 형국이거나, 또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재탄생된 것으로 보인다. 예술, 스포츠, 각계의 전문분야,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인공지능은 곧 모든 것을 바꾸어버릴 태세다. 그것이 그리 즐거운 전망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이 하기 어려운 것을 대신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어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중요한 매 순간마다 우리는 비슷한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인간이 가진 것은 뭘까, 그리고 인간이 추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뭘까.


나는 논문을 쓸 때 맥북을 이용해 구글에서 자료를 찾아서 글을 썼다. 유튜브 강의를 보면서 아이패드에 그림을 연습했다. 애플워치로 수면패턴이나 걸음수를 보며 건강을 챙기기도 했다. 챗GPT가 처음 나왔을 때 영어로 이메일을 쓰고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귀찮은 과정을 겪지 않고 업무를 이렇게 빨리 해치울 수 있다니! 그보다 훨씬 전에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SNS가 한창 시작될 때에도 나는 가장 먼저 환영했다. 새로운 기술들이 우리 삶을 훨씬 편리하게 해주고 있다고 믿었다. 인공지능도 그렇지 않을까.


어디에서나 외로움을 맞닥뜨리는 이에게, 어디로 도망치더라도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르고 서비스 범위가 더 넓은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이 아니다. 그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가진 사람은 외로움을 통해 성장하고 건강해진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지닌 사람은 보다 좋은 삶을 살 수 있고,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모르는 사람은 좋은 삶을 살지 못한다.


일을 그만둔 후에 공부를 시작하고, 과제를 작성하다가 챗GPT를 다시 켰다. 생각이 정리가 안돼서 두서없는 말들을 늘어놓은 후에 다시 정리해 달라고 했더니 꽤 훌륭한 글이 되어 나왔다. 그런데 순간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쓸 때 조각조각 떠다니는 생각들을 잘 모아서 단어와 문장들을 매치시키고 그것을 하나의 글로 완성하는,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소용없어진 느낌이었다. 챗GPT가 어색한 문장을 손봐주고 더 적당한 단어를 골라줄 때, 보고서를 해치울 때의 기쁨과는 달리 어쩐지 무력감이 느껴졌다. 보고서나 이메일을 인공지능이 대신 쓰는 것은 빨래를 세탁기가 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무엇이었다. 내가 해야 할 중요한 무언가를 빼앗긴 것 같았다.


지금은 글을 쓸 때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다. 도저히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한 번씩 어떤 단어가 있는지 물어보기는 한다. 가끔 내 글을 챗GPT에 몽땅 붙여 넣고 싶은 충동이 든다. 더 괜찮은 글로 수정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하지 않는다(다행히 챗GPT가 늘 훌륭한 글을 써주는 건 아니다). 적어도 글쓰기에 있어서는 내 힘으로 성장해보고 싶다. 나는 장강명 작가처럼 유명 소설가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기 때문에 책에서 말했듯, 인공지능이 위대한 글을 쓴다 해도 별 타격은 없을 거다. 작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더 좋은 미래를 그리고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도 조금 회의적이다. 그래도 나 한 사람은 인간의 영역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 겪는 실패와 외로움과 두려움의 과정을 어떤 최신 기기도, 인공지능도 대신해주지는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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