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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Apr 20. 2022

심판, 영혼의 진화.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은 '타나토노트'나 '신' 등의 작품을 읽고 난 사람이라면 친숙한 세계관 속에서 진행된다. 아나톨 피숑이라는 남자가 폐암으로 죽음을 맞고, 사후세계에서 삶을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작가가 그리는 사후세계는 불교과 기독교의 세계관이 적절히 섞여 있다. 천상에 가면 대천사 가브리엘의 심판을 통해 다음 생애가 결정된다는 것이 그렇다.


아나톨 피숑은 천상에 도착하지만 쉽게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어가는 육신으로 돌아가겠다고 우긴다. 그러나 식물인간이  자신의 육신을 보며 현실을 깨닫고 결국 돌아가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시신이 처리되는 과정을 보며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천사 카롤린은 결혼반지를 빼내는 모습을 보고 흥분하는 아나톨에게 "당신한테는 이제 아무 쓸모가 없어요.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 같은 건 없어요."라고 말한다.


육신과 물건에 집착하는 삶을 사는 흔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결혼반지처럼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이제 그 물건이 필요 없어진 후에도 여전히.


이런 과정은 진지하게 흘러가기보다는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진행된다. 천상계에서 심판에 참여하는 천사들의 대화도 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다. 희곡이기 때문에 연극무대를 상상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영혼의 무게


아나톨은 천사들 앞에서 자신이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좋은 가장이었다고 말한다. 곧 과연 그가 좋은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다. 이 심판은 지상과는 다른 기준으로 삶을 평가한다. ‘더 나은 영혼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았는가’하는 것이다.

베르트랑은 아나톨이 유치원에서 친구를 때린 것을 들어 '좋은 학생'이었는가에 이의를 제기하고, 수천 가지 사소한 위반행위들을 들어 '좋은 시민'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려 한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쉽게 무시해버리는 위반행위들까지도 같은 무게로 심판이 되는 것이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도 죄목이 되는 대목이었다. 서로가 완벽한 영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천국의 기준에서 그의 잘못은 '어울리지 않는 상대와 결혼해 서로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은 것', '직업적으로 판단한 사건들에 대해 공감과 연민을 느끼지 못했던 것',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잘못은 '순응주의에 빠져 재능을 발휘하지 않고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 한 것'이었다.


이런 가치들은 우리의 영혼의 무게를 결정짓는다. 계속해서 생을 살아내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존재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실천할 때까지 영혼을 진화시켜 '삶의 구형'에서 벗어나는 것이 작가가 말하는 삶의 목적이다.



자유의지


검사 베트르랑은 심판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 비유를 한다. "그러니까 삶을 요리로 치자면 유전 25%, 카르마 25%, 자유 의지 50%가 재료로 들어가는 거예요." 자신에게 주어진 완벽한 시나리오라도 자유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아나톨은 결국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아 '삶'을 구형받고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한다.


자유의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유전과 카르마를 극복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오히려 사랑을 포기하고 재능을 낭비하는데 쓰일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에 아나톨은 다시 태어나기를 거부한다. 자신이 두려움 때문에 재능을 포기했던 것이 아니라, '정의'라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 판사가 되기로 결정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소’한다.


그런데 아나톨의 삶에 대한 모든 사소한 것들이 세세하게 기록된 천사들의 서류에서 왜 그토록 중요한 내용이 누락되었을까?


아나톨의 자유의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심판’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영혼의 완성을 위해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냐고 묻는 것 같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로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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