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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Apr 19. 2022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닮음과 화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미노 요루



벅차오르는 고백,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성공한 작품이라도 책으로 먼저 읽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의 흐름과 문체, 등장인물의 세밀한 내면에 대한 이야기 등은 책으로 읽지 않으면 겪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도 소설로 읽었다. 자극적인 제목과 청춘물이라는 점 때문에 읽으려던 계획은 없었지만, 우연히 읽게 된 후로 어째서 이렇게 유명해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은 다소 엽기적인 이 책의 제목이 완벽한 감동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을 체험하게 한다. 그게 제목을 특이하게 지은 작가의 의도였다고 한다. 제목을 처음 보는 순간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거부감이 들기도 하는데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교감의 언어임을 알게 되는 순간 벅차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변화한다. 그것이면 소설의 역할을 다 한 것 아닐까 싶다.



다름, 그리고 닮음


소설의 시작은 사쿠라와 주인공의 만남이다. 둘은 원래 같은 반이므로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지만, 정반대의 세계에 살았다. 주인공은 친구에 관심은 없고 혼자서 책을 보는 내성적인 인물이고, 사쿠라는 늘 친구들 무리의 중심에 있는 활달한 성격이다. 교집합이 없는 그들의 일상에 아무도 모르는 둘 만의 비밀이 생긴다. 사쿠라의 시한부 인생을 공유하게 된 것. 사쿠라의 버킷리스트를 함께해주는 클래스메이트가 된 주인공은 사쿠라의 밝고 솔직한 모습에 혼자서 쌓아 올리던 세계에서 조금씩 밖으로 나오게 된다. 사쿠라는 밝은 성격의 뒤에 존재하는 시한부 인생에 대한 남모를 두려움을 주인공에게 털어놓으며 생의 의지를 더욱 키워간다.

둘은 많이 다르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의미를 찾는 주인공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쿠라. 대척점에 선 두 사람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마침내는 서로가 서로의 세계에서 하나가 된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닮아가고 각자가 가진 세계를 온전히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바로 그런 의미다.


나는 내향과 외향의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그럴지도 모른다. 겉으로 표현되는 정도가 다를 뿐.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 나만의 세상 속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어 라고 말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관계를 통해 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내가 있다.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이 그 둘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지점처럼 느껴졌다.



물 위를 떠다니는 배


사쿠라의 예정된 시간은 둘 사이의 교감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그것이 우정인지 사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머뭇거리며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 뒤에 주인공은 사쿠라를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시각에 예정된 죽음과는 다른 죽음을 맞는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사쿠라의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요구들을 들어주며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물 위를 떠다니는 풀잎 배에 비유하며 되는대로 산다고 말한다. 그러니 자신은 사쿠라의 에너지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을 뿐,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굳이 일부러 만나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말하듯, 매 순간의 선택이 그 사람을 만들어간다. 혼자 있기로 한 것이 스스로의 선택이었듯, 사쿠라와 함께 한 것도 그의 선택이었다. 그가 소설의 말미에서 드디어 하루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는 훌쩍 자란 느낌을 받는다.


아무 기대 없이 읽었기에 더 감동적이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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