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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Oct 11. 2022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오늘도 괜히 물어보는 그 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올봄까지만 해도 아이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고민하다가 ‘할머니!’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재차 “할머니가 좋아, 엄마가 좋아?”하고 물어보면 “음… 할아부지!”했다.


그냥 장난기가 많아서 엉뚱한 대답을 한 것인지, 정말 곤란함을 느끼고 제삼자를 택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아이가 현명하다며 기특해했다. 이마를 탁 치며 “솔로몬의 대답이네!” 하는 것이다.


대답이 바뀐 건 얼마 전부터였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빠가 좋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아이의 거침없는 선택에 나는 “쳇.”하고 맘이 상한다.


아이는 나와 있을 때 종종 ”엄마 사랑해! “ ”엄마 너무 좋아 “하며 안겨온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괜히 마음 한쪽이 쿡쿡 찔려온다. 혹시 나는 아이에게 ‘썩은 동아줄’일까?


창밖에 어둠이 짙어지는 저녁 아홉 시 무렵이면 나는 슬슬 아이가 놀던 자리를 정리하고 잘 준비를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도 목욕하고 양치하고 잠옷을 입고 마무리를 하고 나면 열 시를 훌쩍 넘기고 만다.


이미 하루치 에너지를 몽땅 소진한 나는 이제 그만 잤으면하는 간절함으로 몸을 뉘인다. 하지만 아이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자기 전에 책도 몇 권 읽어야 하고 옛날이야기도 몇 개 해달라고 한다. 노래도 종류별로 불러주고 잘 때까지 토닥토닥과 간질간질도 해줘야 한다. ‘간질간질’은 손끝으로 아이의 팔과 다리를 살살 간질거려주는 것을 말한다. 왜 이런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취침 시간이 점점 늦어지면서 나에겐 ’육퇴‘가 사라졌다. 토닥토닥과 간질간질이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넘어가면 슬슬 화가 치민다. 도깨비도 소환하고 버럭 소리도 지른다. 시계가 열한 시를 넘어 열두 시로 향해가면 조바심도 난다.


빨리 자! 자라고!


잠이 안 와서 잠을 못 자는 아이에게 화를 낸다는 게 말이 되나.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제발 빨리 쉬고 싶은 밤 11시에는 아이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아이는 울면서 잠든다. 그리고 새벽에 한 번씩 잠꼬대를 하며 운다. “안돼! 안돼!” 혹시 꿈속에서 엄마가 도깨비에게 전화를 건다고 한 걸까?


그렇게 밤마다 화를 내는 날이 이어졌다. 내가 화를 낼 때마다 아이는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운다. 남편은 일 때문에 새벽녘에야 집에 들어온다. ”아빠는 어디로 간 거야. 아빠 잃어버렸어. 으앙-“ 하며 우는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가 막힌다. 하루 종일 너를 챙기고 있는 건 난데!


며칠 전에는 아이가 또 자다가 펑펑 울면서 깼다. 그날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아이가 잠들 때까지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괜찮을까 기대했었다.


자다 깬 아이가 말했다.

“아빠가 보고 싶어.”

“그럼 엄마랑은 같이 있기 싫어?”

“응. “


아이의 대답에 나는 정말로 서운해졌다. 밤중에 ‘응가’가 마렵다는 아이를 변기에 앉히고 다시 옷을 입히고 안아서 다시 재우려는데 눈물이 났다.


앞으로 나는 이 아이 때문에
얼마나 더 서운해질까.


아이가 아직 신생아일 적에는 매일 포대기에 업어서 재워야 했다. 자는 것도 가르쳐줘야 한다는 ‘수면교육’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았지만 번번이 실전에서 무너졌다. 그때는 친정집에서 같이 아이를 키웠다.


“이렇게 먹고, 자고, 싸고 다 해줘도 나중에 엄마 필요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내 말에 엄마는 기막히다는 듯 말했다.


네가 한 짓을 생각해봐.


그땐 웃고 넘겼지만, 문득 그동안 엄마는 나 때문에 얼마나 서운한 날들이 많았을까 싶었다. 내가 엄마한테 아무것도 모른다고 신경질 낼 때, 상관하지 말라고 밀어낼 때, 엄마가 뭐 그러냐고 대들 때, 엄마는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울컥해져서 돌아누워 훌쩍거리고 있는데, 아이는 자기를 보고 누우라고 내 팔을 흔들며 애원한다. 나는 다시 돌아누워서 아이의 간절함과 두려움을 헤아려보며 토닥토닥했다. 아이는 다시 잠들었다.


고작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 선택받지 못한 것을 가지고 이렇게 서운한데 앞으로 상처받을 숱한 날들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엄마는 정말로 마음이 단단해져야 하는구나.


오늘 밤엔 정말 화를 내지 말아야지.



오늘도 또 똑같은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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