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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Oct 13. 2022

너와 나의 첫 소풍


소풍 가기 전날, 설레서 잠도 못 자는 들뜬 아이의 마음을 솔직히 나는 가져본 적이 없다.


늘 가지고 다니던 물건들 - 책과 공책 그리고 연필 따위-을 가방에서 꺼내 가정통신문에 적힌 소풍 ‘준비물’과 도시락, 먹을 것들을 챙겨서 왁자지껄한 버스에 앉아 멀미와 싸우다가 북적거리는 어딘가에 내려 식은 김밥과 음료수를 마시고 쪼르르 줄을 서서 인파에 휩쓸려 다닌 기억들이 내 어린날의 ‘첫 소풍’이다.


아홉살, 학교에서 소풍을 다녀온 날 엄마가 물었다. 입학 후 처음 혼자서 소풍을 다녀왔던 것 같다.


“소풍가서 뭐 보고 왔어?”

”사람들 머리. “

“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선생님이 앞에 있는 사람 머리만 보고 따라오랬어.”

“그럼 다른 사람 뒤통수만 보고 온 거야?”


엄마는 웃음을 터트렸고 그 후로 동네방네 만나는 사람마다 그 얘기를 전했다. 그때 나는 엄마가 우스개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수치스러웠던 것 같다. 정말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뭘 구경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기념관 혹은 전시관 같은 곳이었던 것 같다. 소풍 인파가 어미 어마 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 긴장감‘이 높은 아이였다. 소풍 전날엔 ‘설렘’보다 ‘긴장’을 하며 잠들었다. 늘 지속되는 일상과 다른 날,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날을 앞둔 불안함. 초등학교 시절의 내 소풍은 그런 것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말없고 침울한 아이에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재잘거리는 여느 사춘기 소녀로, 모험과 방랑을 동경하는 청년으로. 그리고 지금, 앞으로 남은 수많은 날들이 가진 예측 불가능함에 가끔은 ‘설렘’을 느끼는 사람으로.


하지만 때론, 그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하는 때가 있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첫 소풍’을 가는 날이다. 나는 남편이 요즘 일 때문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날이 적으니 이럴 때 한번 다녀오라는 핑계를 대고 대신 가게로 나왔다. 무어라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어린 시절의 긴장감, 거기에 더해 부담감까지 느껴졌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2년째 보내고 있지만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 만날 일도 적었고, 엄마들과도 특별한 교류를 하지 않고 있다 보니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커뮤니티에 대한 긴장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남편에게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낼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지만!


다행히 최근엔 오며 가며 얘기하다 보니 좀 가까워져서 어제도 아이들 데리고 11시까지 놀다 왔다. 아침에는 아이 줄 꼬마김밥을 싸면서 ‘그냥 내가 갈까’하는 생각도 했다.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어제 선생님한테 ‘소풍’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굉장히 들떠 있었다.


“엄마! 나 소풍 갈 거야!”

“소풍 가서 맛있는 거 먹을 거야! “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늘이 새파랗게 맑고 오늘따라 날도 따뜻하다.


나는 잠도 별로 못 자고 일어나서 한 시간이 넘게 걸려 못난 꼬마김밥 몇 개 꼼지락거리며 도시락을 쌌다. 아이는 내 도시락보다 다른 먹을 것에 관심이 더 많겠지만 내 아이를 위한 첫 소풍 도시락이라는 것에 의의를 둔다.


남편이 못 미더워 아이가 입을 예쁜 옷을 골라놓고, 머리도 단정하게 쫑쫑 묶어주고 나서 마무리를 부탁하며 집을 나섰다. 가게에 앉아 아이가 밝은 햇살 속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사진을 받아본다.


역시, ‘첫 소풍’은 내가 갈 걸 그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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