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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Apr 12. 2023

아이가 없는 저녁

아이를 한국에 두고 혼자 캄보디아에 왔다.


프놈펜에 도착하고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갔다. 낯선 사람들과 만나 수 많은 회의를 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사업내용들을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 넣어가며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와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때, 그때 내가 느낌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아이가 없는 저녁이란 이렇게 길고 조용하구나.


그 후 두어달이 흐르는 동안 캄보디아에서의 하루하루는 여유롭지 않았다. 거의 매일 아침 7시 무렵부터 일정이 시작됐고 저녁을 먹은 후에야 쉴 수 있었다. 주말에도 쉴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잠들기 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두 세시간의 자유시간은 낯설고 막막했다. 아이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서 전화도 하고 옛날 사진들도 꺼내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하원하면 집에와서 간식 먹이고, 아이와 놀아주다가, 저녁준비를 하고, 저녁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하고, 이런저런 아이의 요구들을 들어주고, 목욕 시키고, 도망다니는 아이 잡아서 옷 입히고, 양치 시키고, 책 읽어주고, 억지로 아이를 눕혀 옛날이야기 해주고, 간질간질도 하고, 이불속에 숨고 하다가 겨우겨우 아이가 잠이 들때까지 내 시간은 없었다. 아이가 중간중간 TV를 보거나, 장난감 놀이에 빠져있는 틈을 타서

샤워를 하고, 잠시 앉아서 핸드폰을 보는 것이 내 시간의 전부였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12시에야 잠이 들곤해서 육퇴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갑작스럽게 파견근무를 오게 되면서, 원래의 계획과 다르게 가족들이 함께 오지 못하고 당분간은 혼자 타국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이와 떨어져 지내야한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잠깐의 시간일뿐이라고 다독이면서 비행기에 오른지도 벌써 3개월째다.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 쉬게 된 것이 몇 주 되지 않았다. 이제 조금 일도 익숙해졌고, 캄보디아 생활도 익숙해져간다.


육아를 하면서 매일 '나 혼자 하루를 다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딱 두시간만 온전히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매일 틈을 노리곤했다. 아이가 매일 그리워서 울면서도, 지금 혼자인 이 시간만은 내게 모처럼의 기회처럼 느껴진다. 지금 내게 주어진 나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쓰고싶은데 육아를 하고 집안일을 하느라 쓰지 못하겠다고 불평하기도 했었는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또 버릇처럼 늘어져 누워있는 나를 발견한다.


몸을 일으켜 요가도 하고,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쓴다. 지난 수십년간 당연하게 흘려보냈던 '내 시간'들 속에서 지키지 못했던 다짐과 이루지 못한 꿈을 이어본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을 때 온전히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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