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선택이라 밀어붙인 언론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 무지한 사람의 한탄
2024년 5월 1일 ‘극단적 선택’표현의 시정을 권고 한 이후 언론은 '자살'도 '극단적 선택'도 사용하지 않고 '사망' '숨지다'로 사망 소식을 전한다.
객관적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이 정말 '객관적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이 불편하겠지만,
이제야 '자살', '극단적 선택'의 표현이 제 자리를 찾은 것 같다.
[아래는 '자살' -> '극단적 선택' -> '사망', '숨지다'로 자살 보도에 대한 표현 방식의 변천사다.]
2000년 초 까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우리는 보통 언론과 일반인도 자살을 '자살'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언론에서는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극단적 선택'의 시발점은 2003년 고 정몽헌 회장 사망 보도를 기점으로 자살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2004년 보건복지부, 한국자살예방협회,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자살 보도에 대한 첫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자살'이라는 표현을 우회적으로 사용하자라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표적인 원칙은
• 자살 사건은 가급적 보도하지 않는다.
•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
• 고인의 인격과 유족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 자살예방을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
(자세한 2004년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기준' http://suicideprevention.or.kr/04_sub/01_sub.html?no=83&bbs_cmd=view&page=40&bbs_code=Site_BBS_1&t)
문제는 2013년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의 9가지 원칙"으로 개정되면서부터다.
이 중 두 번째 원칙이 "2.‘자살’이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하고 선정적 표현을 피해야 합니다."이다.
선정적 표현을 삼가랬더니 언론에서는 2003년 고 정몽헌 회자의 자살 보도에서 사용한 '극단적 선택'을 선택했다.
이후 한동안 뉴스에는 내 귀에는 듣기 거북한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로 '자살'을 마치 '선택' 한 것이라며 자살한 사람에게 끝까지 책임을 전가하는 단어를 사용했다.
당연히 이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2018년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의 5가지 원칙"을 공식 발표했다.
'극단적 선택'이 얼마나 화두가 되었는지 첫 번째 권고안이
"1.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이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자칫하면 '자살'을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우려와 자살자의 상황과 정신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에 언론중재위원회가'극단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시정 권고 대상이 되었고
2024년 5월 1일 언론중재위원회는 '극단적 선택'사용 시정을 권고하였다.
앞으로는 언론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자살' 이라는 단어도 지양할 것이다.
"자살보도 권고 기준 3.0"의 기준안에 맞춰서 '사망'또는 '숨지다'로 표현할 것이다.
(참고 :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주로 보건복지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구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발표한다.)
돌고 돌아서 자살> 극단적 선택> 사망, 숨지다까지 자살을 언론에서 표현하는 방식의 변천사를 간략하게 알아봤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언론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사망한 고인의 경우
이미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인 국민에
"그건 너의 선택이야. 그걸 우리는 '극단적 선택'이라고 불러"라고 하는 태도에 대해(나를 포함해서)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무도 만연해서 그저 당연해 보이는 '네가 선택했잖아?! 그러니깐 네가 책임져야지!"는 얼핏 보면 우리의 자유과 책임을 강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국가와 사회가 국민을 통제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바로 '극단적 선택'처럼 말이다.
물론 국가와 사회가 있어서 우리가 교육을 받고 가끔은 여가 생활도 즐기고, 과거에 비해서 근무환경이나 주거 환경도 많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우리 국민은 놀고만 있었나?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교육체제에 맞춰서 입시를 준비했고,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발맞춰 커리어를 쌓았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서 싫은 일을 하기도 했다.(혹은 하고 있다)
국가와 언론은 입시, N포, 소외계층 외면에 대한 실직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는커녕,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국가가) 솔직히 잘하고 있는 게 아니긴 한데... 지금 당장 이걸 바꾸면 내가(위정자들) 손해가 너무 크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너희들(국민들)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거야~ 어차피 너희들은 책임을 떠 넘겨도 알아채지도 못하잖아?"
나는 '극단적 선택'을 언론에서 5년여간 사용하는 동안 자살을 등 떠밀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자살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며 자살의 모든 책임을 자살자에게 떠넘기는 표현에 단 한 번도 의구심을 가지거나 반문할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이 죄스럽고 한탄스럽다.
지금까지,
대중은 무지하다는 말이 진실이 아니길 바라는 대중의
외침이었습니다
<참고>
아래는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하는 것의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1. 자살을 선택으로 오인하게 함
• 자살을 사망자의 능동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 실제로 자살 시도자들은 대부분 극심한 정서적 고통으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태이다.
2. 모방 자살 위험 증가
•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자살이 선택 가능한 대안 중 하나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
• 이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모방 자살의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
3. 자살에 대한 편견 강화
•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규정하면 자살 사망자에 대한 이기적이라는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
4. 자살 예방 방해
•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어 사회적 책임을 축소시킬 수 있다.
5. 유가족에 대한 부담 가중
• 자살을 ‘선택’으로 표현하면 유가족들에게 죄책감과 책임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할 수 있다.
(출처 : 퍼플렉시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