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끝에서 내가 지켜준 건, 그가 아닌 나였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붙잡아 주기를 바랐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순간을 흘려보냈다.
처음엔 자존심 때문이라 생각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
말을 아끼는 성격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는, 나를 붙잡을 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억울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정말 애썼다.
그가 원하는 걸 묻고, 이해하고, 기다렸다.
말하지 않아도 읽어내려 애썼다.
반면, 나는
사소한 부탁조차 매번 되풀이해야 했고
기대는 종종 ‘잊힘’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주 “알겠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좀처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이었다.
다음엔 괜찮아질 거라고,
다음엔 조금 달라질 거라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기울어갔다.
맞추고, 이해하고, 기다리며
조금씩, 나를 잃고 있었다.
그가 이별 앞에서 선택한 ‘무반응’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서툼이었을 수도 있고,
애초에 감당할 마음이 없었던 솔직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결국
그건 이별이었다.
그가 나를 붙잡지 않았다는 사실은
한때 나를 미치도록 억울하게 만들었지만
어쩌면 그는 마지막까지
‘그의 방식’을 고수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억울함은 결국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정말 나는, 이 정도의 사랑만 받아도 괜찮은 사람인가?
사실 그 질문은,
나는 아껴줘야 할 사람이라는
내면의 외침이었다.
그 외침은 오랫동안 무시당했고
매번 가볍게 흘려들어졌고
끝내, 존중받지 못한 채 남겨졌다.
내 존재가 점점 불필요해지는 느낌.
그게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그의 하루에서 나는 점점 빠져 있었고
그의 말투와 태도, 표정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점차 지워지고 있었다.
나는 애써 말을 걸었다.
불편한 감정을 조심스레 전했고
지켜줬으면 하는 것들을 부탁했고
우리가 더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고민했다.
하지만, 변한 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의심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이 정도는 그냥 참아야 하는 걸까.
그렇게 스스로를 점점 더 작게 만들었다.
나는 애썼고, 기대했고, 서운했다.
붙잡지 않은 그를 탓하기보다는
붙잡혀 있던 나를
풀어주기로 했다.
억울함은 결국
내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억울함 끝에서
그 사람 대신,
나를 지켜주기로 선택했다.
그 선택은 내 마음도 소중하다고
내가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말해준 순간이었다.
이제는 안다.
사랑이란
서로를 향해 다가가
마음이 닿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걸.
나는 더 귀 기울여지고,
더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걸.
그와의 시간을 통해
내가 얼마나 기울어 있었는지를,
얼마나 나를 잃어가며 사랑했는지를
조용히, 천천히 돌아본다.
그리고 지금,
어설프고 느리지만
나는 조용히, 나에게로 돌아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