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나에게 할당되지 못한 마음에 대하여

그의 삶에서 가장 먼저 밀려난 이름

by 므므

그의 세계는 분명 분주했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었다.


사랑한다고 말했던 그는

늘 다른 세계를 더 사랑했다.


가족, 일, 돈, 취미, 친구들…

나는 언제나 그 모든 것들 뒤편에 머물렀다.


처음엔 이해하려 했다.
바쁘니까,
힘드니까,
지금은 중요한 시기니까.


그가 새로 시작한 어떤 자리에서,
그녀가 손을 보태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다. 고마운 일이네.’

스스로를 그렇게 타이르며, 이해하는 척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

그녀는 나를 이름 대신, ‘걔는’이라고 불렀다.

그 짧은 지칭에 담긴 거리감과 배척의 기운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말했었다.
그녀가 나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그도 그녀도

나는 "걔는"이라고 불러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고,
그 공간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그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 시작을
기쁘게 함께 축하하고 싶었다.
그저, 편한 마음으로
그의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엔
나를 반기지 않을 얼굴이
그의 곁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를 미워할 이유를
이미 정해둔 사람의 공간에—

그가 나를 밀어 넣으려 했다는

그 생각이 나를, 주저앉혔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조차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피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말하지 못했다.
'그 분과 마주치는 게 두려워’라고 말하면
그마저도 나를 멀리할까 봐—

나는 또, 나를 삼켰다.


그렇게

그의 세계에도, 그의 삶에서도

조금씩 멀어졌다.


슬펐지만, 슬프지 않은 척 했다.
두려웠지만, 두려움을 감췄다.

그 앞에선 늘 이해하는 척했다.
내 안은 점점 텅 비어갔지만,
나는 애써 괜찮은 사람인 척했다.


그 사람 인생에서 가장 고단하고 바빴던 시간이

내게는 가장 외로웠던 순간이었다는 게,
슬픔이되어 나의 마음을 짓누른다.


나는 그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어디에 세워야 할지 몰랐고,
그도 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슬픈 건,

그가 나에게 무심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힘든 삶 속에서

그 무게를 견디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지워진 이름이 '나'였다는 것이.

슬프다.


내가 그에게서 사라졌다는 감각은

우리가 더는 같은 마음 안에 머무를 수 없다는,
조용하고 슬픈 징조였다.


나는 작은 귀퉁이라도,

그 마음 어딘가에 내가 스며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부딪히고, 편견에 찔리고,

진실과 거짓 사이를 넘나들며
실수투성이일지라도,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건
내 마음 속 어딘가에는
나를 세워둘 자리가 하나는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슬픔은
누구의 탓도 아닌 채로
나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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