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말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1. 진료실로 향한 마음
3년 반.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의 시간이다.
그동안 나는 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고,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이해하려 애써왔다.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다.
요즘 자주 생기는 오라 증상과 그 후에 이어지는 참을 수 없는 편두통, 그 후의 피로감.
똘이에 대한 그리움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의 감정들.
그 모든 걸 조금은 나누고 싶었다.
진료실에서는 내가 준비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무언가 이미 닫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 한 달간의 시간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환자가 많아서 빨리 넘기고 싶었던 걸까.
내가 아픈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오라는 몸이 보내는 진짜 신호다
오른쪽 눈 바깥에서부터 파도처럼 흔들리는 시야.
10분쯤 지나면 왼쪽 편두통이 시작되고, 구토감이 밀려온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지만 지금은 안다.
이건 ‘오라’라고 불리는 신경계의 전조 증상이고,
그 후에 오는 편두통은 하루를 무너뜨릴 만큼 강하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 살아낸다.
똘이를 잃고 난 후의 감정은 아직도 여전히 내 곁에 있고,
즐거운 일은 없지만 루틴을 지켜내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쩜 그 루틴이 즐거움인데 습관화가 되니, 그러려니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나에게는 생존이고, 회복이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돌아온 건 공감보다는 질문이었다.
“즐거운 일이 뭐냐”고 묻는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말 속엔 내 삶의 리듬이 전혀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진료실, 그곳의 차가운 온도
의사에게 “오라 증상과 두통 때문에 요즘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깊게 보지 않는 듯한 기분.
잘 먹고, 잘자고 , 늘 하는 질문들.
나는 지금 내 몸에 일어나는 복합적인 증상들을
정확히 인지하고, 추적하고, 감당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건 병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몸이 보내는 정직한 신호를 듣는 삶이다.
하지만 오늘의 진료실은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빠의 수필 얘기를 꺼냈을 때조차
그 표정엔 진심보다 거리감이 먼저 보였다.
난, 공황 이후, 뭔가가 주어지면 책임과 의무감이 생기는 것에 적지않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빠가 수필집을 내보라는_도와주시겠다며, 수사법부터 요즘 배우는 중이다.
하나하나 과제처럼 느껴지지만, 나이 80이 다 되신 얼굴에 웃음기가 도시는 아빠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감히 거절은 못하겠더라.
결과야 어떻든 효도다, 느즈막히 효도 한 번 하자라는 맘으로 요즘 꽤 신경을 쓰는 부분이었다-
나는 진료실에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나의 고통은 ‘별것 아닌 것’처럼 정리되어버렸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래서 나왔을 때, 기분이 별로였다.
4. 나는 아직 회복 중이다
나는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회복 중이다.
지금도 오라 증상에 놀라고,
편두통에 시달리며,
혼자일 때면 똘이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걷고, 근력운동, 식물들을 키우고, 신문읽고 책읽고, 글쓰고, 그리고 먹고, 자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오늘처럼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내 마음을 글로 정리하며 스스로를 붙잡는다.
진료실이 내 고통을 보지 못할 때,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 기록이 그 증거다.
나는 아직 아프지만,
나는 여전히 회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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