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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Nov 26. 2019

사람이 미안해

사람의 삶 때문에 죽는 동물들을 보며


돼지열병 막아라, 야생멧돼지와의 전쟁_ 경인일보 김금보 기자 https://gallery.v.daum.net/p/premium/phopick3/Nf3vIEuKCi


돼지열병으로 파주며 강화의 돼지들이 살처분된다는, 살처분됐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어찌됐든 그들을 매일같이 먹이고, 아프지 않게 돌봤을 농장주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또한 살아있는 생명으로 퍽 지능적이기까지 한 돼지들이 힘없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끔찍했다. 이제 막 태어난 새끼돼지도 있었을테고, 새끼를 품은 어미돼지도 있었을테고.. 농장주가 정을 들이며 키운 돼지도 있었을 텐데 하는.. 그럼에도불구하고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죽여야하고, 죽임 당해야하는... 그저 멀리서 머리로만 드는 힘없는 생각.  

오늘자 포털에 위 기사(제202회 이달의 보도사진상)가 떠서 보니, 행과 행 사이 기자의 분노와 나도 들었던 무력감이 느껴진다. 기사를 보면, 명확한 경로없이 양돈농가의 돼지들이 감염여부 관계없이 도살처분된 데 이어, 이제는 보란듯이(보여주기 식으로) 접경지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며 (감염여부와 관계없이) 야생멧돼지들을 죽이러 나선 것이다. 먼저 이런 뉴스는 흔하다.  

멧돼지들이 농장의 곡식을 털어갔네, 도시에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했네, 상해를 입혔네하는. 그렇게 인간에게 무해한 멧돼지는 우리 주변에 왜 존재하는가? 전국에 무해한 멧돼지들은 왜 그리 많은가? 그들이 산이 아닌 산 아래 내려와 해를 끼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좋거나 혹은 사람에게 앙심이 있어서는 아닐게다. 굶주림을 채우러 본능에 따라 움직인 것이지 농장의 개와 고양이랑 친구라서 그들이 보고파서 내려온 건 아닐게다. 접경지의 야생멧돼지들은 어쩌다 ASF 바이러스에 감염됐을까? 사람의 삶에 이로워도 양돈농가의 돼지들은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도살처분되었다. 사람의 삶에 이롭지 않은 야생멧돼지의 죽음은 말해 무엇.   

'야생멧돼지 몇 마리를 더 잡아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잠식될까? 9월 17일 경기도 파주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첫 발병 이후, 명확한 감염경로가 밝혀지지 않은 채 접경지 양돈농가의 많은 돼지가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도살처분 되었다. 
뒤늦게 접경지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잇따라 검출되면서, 정부는 그제야 야생멧돼지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중략) 이날 모인 엽사들은 그들이 데려온 수렵견들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그들을 불러모은 정부관계자는 시종일관 초조한 모습이었다.
엽사들은 잡은 멧돼지의 시료혈액을 곧바로 채취했다. 무거운 멧돼지는 방역처리 없이 죽은 자리에 그대로 두고, 꼬리만 잘라 들고 하산했다.' 경인일보 김금보 기자   

우리는 백 년을 못 살고 가는데, 이 지구는 인간만 사는 게 아닌데, 인간이 지구의 주인도 아닌데, 설사 주인이라고 해도 위와 아래는 애초에 없는 것인데. 조금 더 못 가져가서 안달하고, 쌓아두고 살려 한다. 이날 모인 엽사들은 그들이 데려온 수렵견들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그들을 불러모은 정부관계자는 시종일관 초조한 모습이었다. 이 두 문장에서 '저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를 읽는다. 

나 또한 그런 자세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그것밖에 삶에 답은 없다고. 이 사회는 돈이 전부이고, 돈이 이끌고, 소수의 힘있는 권력자들이 움직이는 세상이라고. 그들은 위에 있고, 우리는 아래에 있고. 우리는 돼지를 먹고, 돼지는 우리에게 죽고. 멧돼지는 산에 살고, 먹이사슬이 끊어진 산에는 먹을 게 없고, 산 아래 내려온 멧돼지를 죽이고, 찾아가 죽이고, 꼬리만 잘라 가고. 아프리카에서 돈 주고 사자를 사냥한 돈 많은 사람, 일본에서 죽어나가는 돌고래들. 한편으로 나는 어떠한가. 내가 직접적으로 총을 들지 않았고, 칼을 들지 않았다고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을까. 나는 방관자, 위에서 시키는 사람을 지켜보는. 나도 공범, 생명을 해치는. 멀리서 머리로만 드는 힘없는 생각을 그냥 지나치면 안될 것 같아 글로 남긴다. 사람이 미안해. 조금이라도 나은 행동을 찾아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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