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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Dec 22. 2019

너에게 아무 것도 아닌 일, 내겐 다른 일

우연한 시간 속에 다짐하는 새해 나의 자세 



한 달에 한 번은 주말에 출근해야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 잡지 마감이란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나 혼자 서두른다고 해도 여러 업무가 모여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에 마감 기간은 늘 바쁘고, 벅차다. 때론 그 바쁨에서 아드레날린이 샘솟기도 하니 사람은 참, 일에 맞춤되어 태어나는 것 같다. 토요일에 이어 출근하는 일요일. 주말의 마감은 9시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좀 편하다. 한 낮의 시외버스에는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어쩌면 예식장, 어쩌면 모임, 어쩌면 나 같은 주말 출근이려나. 

버스, 기차, 비행기, 자동차 등 탈 것에서는 잠을 잘 못 이루는 편인데 오늘은 달랐다. 늘 유지되던 생체리듬이 깨진 탓에 그제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덕분에 조금씩 쌓인 피곤이 차올라 버스에서 설핏 잠이 들었다. 내가 내려야할 곳이 다가오는데도 정신이 몽롱했다. 그러다 눈을 뜨니 차창밖에 익숙한 가게 간판이 보인다. 오마이갓! 이 역을 지나치면 버스의 종점으로 그곳까지 버스로 7분. 회사까지는 걸어서 15분이다. 맨 뒤에 앉은 나는 마지막 승객이 버스에서 내릴 채비를 하는 것을 보았다. 당황하니 그때까지 채우고 있던 안전벨트의 버클도 못 찾고 허둥지둥. 순간 내리지 말까 망설였으나 버클을 찾자마자 "기사님, 잠시만요"를 외쳤다. 버클이 탁하고 풀어지마자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통로로 뛰쳐나갔다. 다행히 가방 깊숙이 넣어놓지 않은 카드지갑을 바로 꺼냈다. 카드를 찍으며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라고 했는데 이건 기사님이 아닌 몇몇의 승객들에게 건넨 사과였다. 평상시 같으면 나는 그냥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을 거다. 원래도 출근길에는 역에서 15분 이상을 걸어오니까. 더군다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허우적대거나 뭔가 무리를 하면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나는 상상해본 적 없다. 

"우하-." 

이렇게 가까스로 버스에서 내린 적은 처음이다. 턱걸이로 중요한 시험을 통과한 것 같다. 매달 한 번씩은 꼭 밤샘을 해야 일이 끝나는 것도 이 회사, 이 일이 처음이다. 열심히 살려고 마감주간을 보내는 것도, 기꺼이 주말을 일로 보내는 일상도 나는 아직까지는 괜찮다. 내가 내려야할 곳을 알고 당당히 ‘잠시만요!’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보내온 시간들로 변화한 덕분이리라. 타인들이 쉬지 않고 떠드는 소리에 귀를 세우는 대신 잠에 든 무던함도 더욱 커지길 바란다. 마감이 끝나면 나는 또 본래의 나로 돌아갈 테지만. 내가 내려야 할 곳과 타이밍을 정확히 파악하고, 카드지갑은 진즉 주머니에 넣어두거나 손에 들고 있겠지만(마지막 사람이 내릴 때까지 안전벨트를 메고 있지도!). 어떤 시간, 어떤 일상, 어떤 일에 놓인 나는 오늘처럼 조금씩 달라진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우연한 시간 속에 다짐하는 새해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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