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Aug 25. 2020

개인주의자에게 그런 말은 하지마오

나도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될 거야



문유석 작가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참 재미나게 읽어더랬다. 판사란 아주 높고 까다롭고 고지식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아니 왜?)했는데 책 속의 그는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특히나 전철을 탈 때 사람이 없는 칸, 시간을 골라 타는 그런 행동. 나 역시 아침잠을 이겨내며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하는 까닭은 전철에서 수많은 타인과의 부딪힘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전철에서 일방적인 고함을 당해본 적도 있고, 서로 고함을 지른 적도 있다. 아, 창피해. 암튼 타인과의 필요치 않은 부딪힘으로 겪게 되는 잡음이 너무도 싫다. 나의 개인주의 성향은 내가 듣기 싫은 소리나 행동은 타인도 싫을 거라 여기고 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길을 가며 담배를 태우지도 않고, 설령 담배를 피운다 하더라도 꽁초를 아무 데다 버리지 않는다. 다행히 이럴 일은 애초에 없다. 담배를 원래 안하므로. 그렇다고 흡연자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내가 안 배워서 다행일뿐. 그래도 앞에 가시는 분의 담배 연기를 생각지 못하게 마시는 건 넘나 싫어.

개인주의자를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난 욕 먹는 게 싫을 뿐 칭찬은 참 좋아한다. 어제 읽은 김원희 작가의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 버렸지 뭐야'에 개인주의에 관한 언급이 되어 흥미로웠다.

'그러나 개인주의란 것이 과연 그런 것인가? 나이든 여자가 무거운 짐을 힘겹게 들고 갈 때, 자연스럽게, 또는 반사적으로 다가와 "도와드릴까?" 또는 "제가 들어드릴게요"라고 말하며 행동하는 것은 개인주의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인가?'

작가님 말대로 그런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다. 저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게 나란 말씀(;)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린 적도 여러번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주머니의 리어카를 밀어들었을 때는 '축복 받을 거'라는 과분한 칭찬도 들었다. 누가 길을 잃은 것 같으면 표정만으로도 가서 물어봐서 알려주고 싶은 오지랖 충동도 일어난다. 아, 그러나 이런 나라도 피할 수 없는 타인과의 부딪힘이 이사온 후 계속 발생되고 있다.


"아가씨. 000호 살죠?"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계단을 오르는 나를 한 아주머니가 불러 세웠다. 이사온 지 얼마안됐을 때라 누군지도 몰랐다.

"네. 맞아요."

"혹시 집앞에 소주병 아가씨 거예요?"

옆집 문 앞에 소주병이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에 잔뜩 쌓여있는 걸 이사온 첫날에 나도 보고 참 놀랐는데 그걸 내꺼냐고 묻는 것이다.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고 하는 말인지 본심은 모르겠다. 그분은 같은 라인에 사는 아파트 부녀회장으로 이 사실을 몰랐었을까 싶다.

직장을 다니느라 아주머니를 자주는 못보고 한달에 한 번은 우연히 마주치는데 두 번째 만났을 때도 어딘가로 향하는 날 불러세워 "아가씨. 혹시 담배펴요?"라고 첫마디를 건넸다.

얘기인즉슨 얼마 전 밤에 위층에서 담배꽁초가 날아와 자신의 베란다에 떨어졌다는데 루즈 자국이 있었더랜다. 다들 자기는 아니라고 하여 나한테까지 물어보는 거라고. 얼마 전에는 "아가씨. 남편있어요?" 라며 위에서 담뱃재가 날아와 깜짝 놀랐다고 했고 그날의 질문으로 이분이 부녀회장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남에게 폐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분의 이런 질문 자체가 너무나 괴로운 것이었다. 의심받고 있다. 억울해. 내가?! 왜?


아무리 나 혼자 계단을 올라갈 때 발소리를 조심하고, 경비아저씨에게 따뜻한 커피를 사드려도 이 분 눈에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살펴봐야 할 사람 같다. 이 분을 마주칠 때마다 귀에 이어폰을 안 꽂고 있었던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이어폰도 없고 내가 먼저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아주머니 4~5명이 주차장에 나와있길래 웃으며 인사도 하고, 무슨 일 있냐고 말도 걸었는데 다들 무표정하다. 그리고 분리수거 봉투를 든 내 뒤통수에 "저거 쓰레기 아냐?"라는 한 아주머니의 말이 들리더니 예의 부녀회장 아주머니가 부리나케 와 "이거 다 종량제에 버려야해요." 이런다. 안에 든 것들이 무엇인지 확인도 안 하고 전부 종량제 행이라니.

내 손에 들른 생수병도 처음엔 안 된다고 했다가 이것도 안되냐니 그건 우리가 다 일일이 밟아서 버리는데 '이런 건 안돼요.' 하면서 베스킨라빈스 뚜껑과 라면의 후레이크 비닐을 가리킨다.

"패트병은 되고 이건 왜 안돼요? 같은 플라스틱인데."

"원래 안돼요. 원래. 이 아파트는 작아서 큰 아파트처럼 그렇게 안돼요."

"저로서는 같은 플라스틱인데 왜 안되는 건지 이해가 안가요. 안내문을 써서 고지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엔 별 말씀이 없으시다.

"저 처음 이사왔을 때 경비원 아저씨에게 분리수거하는 법 여쭤봤거든요. 제가 어디에 어떻게 내놓는지 모르니까. 아저씨가 분리수거는 내놓으면 아저씨가 알아서 버린다고 하셨는데 비닐이고 뭐고. 보니까 다 그냥 놓던데 그래도 저는 다 씻어서 내놓거든요."

분리수거 봉투 속의 라면 후레이크는 분말스프와 달리 깨끗한데 이것도 안되는건가. 아, 혼란하다. 혼란해. 근처에서 기다리던 동생에게 전화가 와 아주머니와 길게 얘기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가 힘들어요. 다 그냥 갖다 버리니까. 아저씨는 자기가 다 한다고 그러는데 안 돼요. 다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해요."

"일단 제가 나가야해서 이건 뒀다가 올 때 갖고 들어갈게요."

그리고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아주머니들이 쓰레기가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난 졸지에 몰상식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검색에 돌입했다. 플라스틱 용기 중 PP, PE는 씻어서 내놓으면 분리수거가 된단다. 베스킨라빈스 뚜껑이 PE다. 아오! 이렇게 분리수거가 되는 걸 무조건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게 더 큰 낭비이고 사회 문제인 것을.... 내가 그분에게 말하면 달라질까? 그냥 날 그런 사람으로 보고 싶어서 황당한 질문들을 아침 인사처럼 하는 사람을. 사람들을.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설득이 안 되는 사람도 분명 곳곳에 있는 거다. 타인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자신의 잣대로, 평생 살아온 가치관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 내가 어찌 살며 고집센 그들을 피할 수 있을까? 이보다 큰 아파트에 가면, 새 아파트에서 살면 좀 나아질까? 엄마는 회사 업무도 아니고, 상사 고민도 아닌 아퐈트 아주머니땜에 스트레스를 받는 날 보고 조언했다. 내가 그분에게 인사를 안 해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 작은 선물도 집에 사놨는데 오늘보니 인사는 전혀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선물은 경비아저씨만 드려야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난 참 힘들게 일하고 있다고 그분은 스스로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할지 모른다. 나의 황당함이 누군가의 행복으로 대체된다. 뭐 어떠하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무거운 짐 든 분을 도와드릴 거야. 자리도 양보할 거야. 계단을 오를 땐 발소리를 최대한 조심할 거야. 그럴 때 내가 행복하고 행복해질 사람이 더 많아. (그래도 다음에 만나면 꼭 얘기해줘야지. PE, PP는 분리순거됩니다. 안 하는 게 더 안 좋은 거예요. 지구는 모두의 것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우주에도 닿는 쓸데없는 생각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