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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26. 2018

푸른집에서 만난
한 남자의 우주

@ 이효석 문학관의 이효석



무어라고 병을 비관해서 죽은 것이다
빚 때문에 움치고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웃 사람한테 참을 수 없이 모욕을 받은 때문이다
아니야, 사실은 술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구구하다
허나 맨 마지막에 이웃집 할머니는
나즉히, 까맣게, 말했다     
그가 사랑하던 강아지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내도 아들도
물론 손자도 없이
오직 한 마리 강아지를 사랑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강아지가 
아 그 강아지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1927 이효석 시 ‘노인의 죽음’


이 시가 발표된 해가 1927년이니 선생님의 나이 20세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36세의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아내가 죽은 지 오래지 않아서였다. 그 시절에 ‘사람이 죽는 데 반려견의 죽음이 있다’는 마음을 가졌던 선생님,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을 때의 심정은 헤아릴 수 없다. 이효석 문학관에서 처음 알게 된 ‘노인의 죽음’이란 시가 사무치다.      


이효석 선생님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메밀꽃 필 무렵’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를 기리는 이효석 문학관은 그가 사랑해마지 않은 푸른집을 모티브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초대를 받듯 곳곳을 다니며 평창과 메밀, 노인과 강아지, 남편과 아내, 딸과 아들, 또, 러시아와 커피에 얽힌 한 남자의 우주를 만나보았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븟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1936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

                                                                                  



@ 이효석문학관

강원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학길 73-25 

033-33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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