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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26. 2018

우리의 세계는
무엇으로 둘러싸여 있을까?

@ 일산 Julie’s French Table




열망을 닮을 수 없다면


나는 아직 내가 얻지 못한 나이의 여성에게 배울 점을 발견하고자 한다. 그들은 무엇이 다르지? 내 미래에 대한 힌트를 나보다 더 산 그녀들은 쥐고 있을지 몰라, 그를 발견하는 날에는 설레는 기분에 종일 들뜨기 마련이다. 힌트를 가진 그들에겐 ‘바쁨’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각박한 현대 도시인의 바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여유가 넘쳤다. 그 여유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기꺼이 빠져들게 하는 열망. 

언제나 질문할 자세로 팔을 들고, 시켜서 일 하지도 않는다.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아도 부지런히 찾는다. 덕분에 인연을 우연히도 만들어낸다. 나이 들어 시력이 낮아도 그 눈은 이전보다 더욱 많은 것을 보리라. ‘나이 들었다’를 단순히 ‘늙음’으로 보지 않기를. 죽음을 완성하러 오직 미래를 걷지 않기를.  

그들은 결과가 확실하지 않아도 확신을 갖고 있었다.   

"가보지 뭐. 길이 길을 만드는 걸 내 눈으로 봤어."

좋아하는 일에 쏟은 열망으로 그는 이미 따뜻하고 여유로운 사람이다. 곁의 사람들을 편안케 했다. 그를 둘러싼 세계는 점점 넓어지고, 관계는 깊어져 간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으며, 이루고 싶은 꿈은 구체적이다.  


모란 = 목단 = Tree Paeony

 

Julie’s French Table     

내가 만난 여성, 김민정, 일산의 주택에서 정원을 가꾸고, 프랑스 요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Julie’s Garden으로 부르는 정원에는 그녀가 특히 좋아한다는 플록스(Phlox)가 피어나고, 작약, 목단, 요리에 쓰는 허브, 향이 좋은 체리 세이지, 관상용 고사리가 유유상종하고 있다. 유난히도 바람이 많이 불던 올해 봄을 견디느라 목단 꽃이 무겁게 떨어졌다. 사느라 애쓰는 건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12년을 손수 가꾸어온 이 정원에서 시절을 보낸 자녀들은 어느새 제 갈 길을 알아서 가는 청년이 되었다. 세상의 엄마들은 너무 바쁘지 않은가. 그러다 정신 차리고 보면 엄마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하릴없는 나이를 맞게 되고. 그때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지? 김민정은 오십대를 인생의 황금기로 여겼다. 그래서 ‘배움’을 선택했다.

“프랑스 요리를 배우려고 학교를 찾은 건 아니었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한다는 곳으로 ‘르 꼬르동 블루’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가르치는 게 프랑스 요리여서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한 땀 한 땀 수놓는 것이 비단 옷뿐이랴

요리, 학교, 무엇이 우선순위였든 그녀에게 프랑스 요리는 맞춤옷처럼 들어맞았다. 그 전에는 자신의 삶에도 마감이나 디테일이 부족했다는 그녀는 프랑스 요리를 하며 자신의 삶도 변화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요리는 ‘배려’예요. 요리사 입장에서는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닌데, 대접할 사람을 생각하며 그 과정들을 다 감내하거든요. 대접받는 분들도 그런 과정을 알고 요리사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디쉬를 마주해요.”

그렇게 집 밖은 Julie’s Gardend으로, 집 안은 Julie’s French Table로 자신의 삶을 촘촘하게 완성해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끝으로 묻고 싶었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고.

“프랑스 요리와 인연을 맺으니까 배움의 범위가 넓어지더라고요. 와인과 치즈 공부도 하게 되고요. 차(tea)도 배우고 싶어요. 아, 오토바이도요. 언젠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꼬모(Como) 호수를 달리는 라이더를 봤어요. 헬멧을 벗으니 햇빛에 하얀 머리카락이 반짝이고, 그 앞에 오토바이는 또 어찌나 잘 어울리고 예쁘던지요. 꼬모 호수를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예요.”     


배움을 선택할 때 하나의 세계가 문을 연다. 그 세계를 다 보고 난 뒤에도 그 문은 닫히지 않고 또 다른 문을 열어 보인다. 그때 나의 선택은, 또다시 배움. 

“지식을 쌓는 데 책도 좋은 스승이지만 저는 학교를 선택하고 다니길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을 통해 얻는 지식, 그리고 같은 수업을 듣는 이들과의 만남, 그런 관계들이 이어져 나가고요. 모든 것이 그렇지 않나요? 결국은 사람과의 어울림에 있어요."


물망초.  Forget me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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