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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Jan 25. 2022

무지개  너머

명화를 보고(짧은 소설)


  일곱 명이 모이기 시작한 건 벌써 4년이나 되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홀가분한 상태에서 한 달에 한 번 밥이나 먹자고 한 것이 이젠 밥 먹는데서 그치지 않고, 영화나 연극도 보고, 야외 수목원도 다녀오고, 책을 선정해서 읽고 독후감을 서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시를 암송해 오기도 하는 나름 한 달의 생활을 활기 있게 만들어 가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1년의 마지막 달은 불우한 곳을 찾아 적은 금액이지만 나눔도 실천하기도 하였다.


  홀가분한 상태에서 모이기 시작했다고 사실 말하고 싶지만, 이 모임은 자녀들이 같은 중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영재반이 운영되면서 시작되었다. 영재반은 외국어고등학교보다 과학고등학교를 목표로 두고 있었다.  20명의 학부모들로써 서로 알게 되었고, 처음엔 누구의 엄마와 누구의 아버지로 시작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면서도 아이들의 성적에 민감해 그리 편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모임은 그만두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엄마로부터 영재반 은경 엄마가 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고 입원한 상태인데 한 번 병문안 가지 않겠냐는 연락을 해왔다. 시간이나 날을 서로 맞추어 보니 영재반 모임 중에서 7명이 시간이 맞았다. 그렇게 7명이 모여 병문안을 가면서 학교에서의 모임보다 더 진솔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모두 자녀를 앞세우지 않으니 잘난 척도 없었고, 더욱이 아픈 사람을 가운데 두고 만나는 모임은 자신도 뒤돌아 보게 했다. 은경 엄마가 퇴원을 하고 그동안 병문안 와 준 것에 감사의 마음으로 밥을 산 것이 그 모임의 시작이었다.


  그 모임에서 수화는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갔다. 일곱 명이니 모임의 이름을 무지개 모임이라 명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도 수화였다.


  무지개 모임은 항상 매달 1일이었다. 시간과 날짜에 얽매이지 않았으니 요일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달 첫 번째로 맞는 날부터 우리들만의 날로 만들어 가자고 수화가 제의했고 모두 찬성을 했다. 그렇게 무지개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하늘에 무지개를 만들었다.


   매달 하나씩 이벤트가 주어지곤 했다. 이번 달은 어떠한 주제도 주어지지 않은 아주 착한 달로 맛난 밥 먹고 차 한 잔 마시며 수다를 떨겠거니 하고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명은 수화가 또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왔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수화는 싱긋 웃으며 모두에게 사진을 한 장 나누어 주었다.



" 오늘은 차 마시며 이사진을 보고 느낀 점을 우리 얘기해보자. 어때?" 수화의 말이 끝나자 모두 눈이 동그레 졌다. 눈이 동그레 졌다고 하지만 주름 잡힌 눈들이어서 크게 동그레 지지 않았다. 서로 묘한 표정을 지으며 가방 속에서 제일 먼저 돋보기를 꺼낸 친구는 '노랑'이었다.


 우습지만 이 모임에서는 무지개의 일곱 색깔 중에 마음에 드는 색을 자기 닉네임으로 하고 있었다. 이름을 색깔로 바꾸면 어떠냐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분련이가 했다. 처음엔 누구의 엄마에서 본인의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해 모두 이름을 불렀다. 한 1년을 이름을 부르다가 어느 날인가 분련이가 느닺없이 개명을 하고 싶다고 하며 투덜거렸다.


 "'분련'이가 뭐야, 난 평생 ''자를 달고 살았어. 아무도 '분  련'이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어. 허긴 우리 엄마 아부지도 '분년아!' 했다니까." 그 말에 모두 박수를 치고 깔깔거렸고, 그래서 분련이가 제일 먼저 고른 색깔이 '노랑'이었고 그 누구도 노랑색을 탐내지 않았다. 분련이는 이 노랑색의 매력을 '빈센트 반 고흐'에서 찾았다.


" 난 그림을 잘 모르지만 '고흐'노랑색을 보면은 내가 살아있는 낌이야.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을 봐. 별이  빛나잖어. 근데, 이그림보다 나는 '밤의 카페테라스'라는 그림을 더 좋아해. 여기서 이 황금 같은 노란색은 나의 가슴을 뛰게 해. 그림 속 카페에서 '고흐'가 마신 '압생트 술'을 한 잔 마시는 거야. 인생 끝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


 "왜? 취하도록 마시면 더 좋지" 얘기를 듣고 있었던 은수가 한 마디 거들었고, "그러다가 귀 자르면 어쩌지" 하며 '혜영이가 거들었다.


  "해바라기 그림은 또 어떻고. 아! 노랑이여!" 분련이의 '빈센트 반 고'의 찬미가는 여기서 대충 끝냈다. 우리 모두는 분련이의 '흐'에 대한 박식한 지식에 분련이가 틀림없이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단지 노랑색이 좋아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고, 다른 화가들은 거의 나 몰라했다.


  이렇게 해서 '노랑'은 분련이에갔고, '빨강'을 고른 건 은경 엄마 미숙이였다. 아니 친구들이 미숙이에게 '빨강'을 주었다. 큰 소리 한 번 질러보지 않은 성격을 알고 있어서 정열적인 색깔을 골라야 한다고 다들 '빨강'미숙이가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숙이도 좋아라 했다.


 '초록'영자'주황'혜영이가 '파랑'은수'보라'는 정숙이가 그리고 또 낄낄대며 이름도 이쁜 수화는 연하의  남편을 만났으니 남편의 '색'을 고르라고 해서 수화가 '남색'이 되었다. '남색'''자가 남편의 '남색'으로 변하는 묘한 순간이었다. 



  한 명 두 명씩 돋보기가 꺼내졌고, 누진다 안경을 쓴 '파랑'이와 레이저 수술을 한 '주황'는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사진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눈으로 보면서도 입으로는 사진에 대해서 말이 하고 싶어 근질거렸다.


  "나, 노랑! 혼자 있는 걸 보면 과부가 틀림없어. 이 바닷가까지 혼자 왔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틀림없이 죽은 남편하고 같이 왔던 이 바닷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거야. 아, 내 사랑하면서 말이야!" 노랑의 말에 몇 명이 키득거렸다. 아직도 내 사랑 하나며!


  "나, 초록! 난, 노랑의 말에 찬물을 끼얹고 싶어 졌어. 남편하고 싸운 거야. 더군다나 결혼기념일에. 그래서 혼자 나온 거야. 옷을 봐. 함께 외출하려 했지. 그런데 도저히 같이 나갈 수 없었던 거지. 요즘 젊은 아이들은 결혼기념일을 내발 등 찍은 날 이래." 초록의 말에 "어머머, 정말? 너무했다." 그러나 몇 명은 고소해했다.


  "나, 주황! 이 사진 속 여인의 옷하고, 바닷가의 의자가 너무 언발란스야. 이런 의자면 여인의 옷이 좀 현대적이어야 하는데, 여인의 옷은 중세시대 같아. 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을 보면. 아, 뭐랄까!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풍자를 하려 한 것 아닐까? " "우아! 역시 주황이네. 늘 사회 정치에 관심을 두더니." 노랑이 대꾸했다.


  "나, 보라! 이 여인은 치매를 을 앓고 있는 여인이야.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거든.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왔어. 아니 찾아왔다기보다 요양보호사 선생님 눈에 띄지 않게 도망 나온 거야. 이 여인은 늘 자신이 있는 곳에서 탈출을 하는 버릇이 있었어. 자기가 살던 바닷가 집으로 가고 싶어 했어. 마치 귀소본능이 있는 비둘기처럼 늘 바다를 향해 도망치곤 했지. 바다 냄새를 맡기만 해도 그녀는 입을 헤벌리고 웃었어." "우! 그럴싸하군." 파랑이 끄덕이며 얘기했다. 보라는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다음은 나, '파랑'이 해볼게. 이 여인은 지금 조국을 떠나야만 하는 운명이야. 망명을 해야 해. 그래서 나고 자란 고향의 바닷가를 찾아왔어. 한 줌의 모래라도 가져갈까 하고. 이제 떠나면 죽어서도 못 오거든."  "망명까지 나왔네." "죄를 지었나?" 모두 심각해졌다. 한 장의 사진이 이들을 오랜만에 심각하게 만들었다.


"나, 남편의 남색" 그러자 모두 낄낄거렸다.

"실은 지난 학교 모임에서 이 사진을 보고 글을 써오라는 거야. 생각이 나야 말이지. 그래서 너희들의 생각을 들어 보려고 내가 수를 부렸지."  "뭐야? 우리들한테 네 숙제를 떠 맡겨?" 주황이 말했다. "떠 맡겼다기보다... 오늘 찻값은 내가 낸다." 그 소리에 모두 잠잠해졌다.


  그때 '빨강'이 말을 했다. "내 이야기도 들어줘. 나, 빨강! 이 여인은 지금 죽어가고 있어. 이 옷은 그녀가 사랑했던 어머니의 옷이야. 그녀는 행복한 삶을 살았어. 남편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자녀들로부터는 존경을 받았지. 지금 가족과 친지들을 두고 떠나야 함에 슬프기도 하지만 담담하기도 해. 그녀는 이 옷을 좋아했어. 어머니가 결혼할 때 입었고, 자신도 이 옷을 입고 결혼을 했지. 이 옷은 그녀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옷이야.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 옷을 입어 보고 싶었어. 그리고 이 옷을 입고 떠나고 싶어 한 거야."


  모두 잠잠했다.

그리고 슬며시 눈가를 훔치고 있는 '보라'를 보았다. 눈물 보이지 않으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주황'도 보였다. 모두 언젠가 '빨강'이 "난 죽을 때 베옷 안 입을 거야. 드레스 입을 거야. 살아서 입지 않은 베옷을 왜 죽을 때 입어?" 했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그러나 정작 '빨강'은 담대했다.


 "나, 빨강! 나 유방암 수술 4년째야. 4년간 난 죽음을 달고 살았어. 늘 관에 들어갈 때 베옷 말고 어떤 옷으로 입어야 하나 생각했지. 수의라는 게 별거 있어? 또 비싸긴 얼마나 비싸다고. 그 값이면 살아생전 입다가 죽을 때 입고 가도 되겠다 생각했어.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는 생일이라잖아.  그렇다면 ''자의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았어. 난 두 딸의 결혼식 아니 혼인식에 입었던 예단 한복을 입고 가면 어떨까 생각했지. 언젠지 모르지만 그 옷 입고 갈 거야."


 '빨강'은 마치 결정이라도 한 듯한 목소리였고, 평소와는 다르게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누구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때 남편의 '남색'이 말을 꺼냈다. "그래. 빨강 너는 준비가 됐네. 네 하늘의 생일날 입을 옷이. 그렇다면 무지개님들 하늘 생일날의 옷은 어떤 옷이 될지 다음 달에 오면 얘기 하기."

 "뭐? 모임에 수의 얘기를!" 초록이 대꾸했다.

 "그래. 옛부터 '부모님 수의를 윤달에 장만하면 장수하신다.'는 우리나라 얘기가 있잖아. 자식들에게까지 수의 얘기를 뭐하러 해. 내가 입고 가야 할 옷은 내가 골라야지." 수화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히 내뱉어 보였다.


  그리고는  '빨강'을 보며 싱긋 웃으며 "내가 보니, 너는 90세까지 밖에는 못 살겠다. 그때까지!딱 90세까지 밖에... 더 이상은 곤란한데.."  편의 '남색'이 마치 운명의 시간을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권한이 있는 사람처럼 '빨강'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그 순간 '초록'이 먼저 "아멘"이라고 대답했으며 누구라고 할 것도 모두 따라서 "아멘"으로 답했다. '초록'이 절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친구였지만 '글라라'란'세례명을 갖고 있는 빨강'위하여, 아니 모두의 종교와는 상관없이 단지 '빨강'에게 '아멘' 이라고 하면 그 기도가 이루어질 것처럼, 마치 경건한 예식을 치르는 것처럼 모두 마음을 모았다.


각자 돌아가는 길엔 '빨강'을 위한 '아멘' 소리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늘 by  빈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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