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실터실 검정 고무줄

골목 너머 기억

by 빈창숙

으흐흥!

고무줄놀이란 말만 해도 내 입가에는 웃음이 나오네. 내가 올해 칠십이니 꼭 63년 전 이야기네 그려. 고무줄놀이는 그 당시는 최고의 놀이였지. 팬티나 바지에 넣는 검은색으로 된 고무줄을 여러 개 이어 붙이면 다 된 것이었어. 지금 생각하니 고무줄 모양은 잇고 또 이어서 마치 높은 담 위에 동그랗게 철조망을 친 모습처럼 터실터실했어.


고무줄놀이는 우리 집 앞 골목보다 학교에서 더 많이 하고 놀았지. 학교 운동장이 넓어 20 명씩도 한꺼번에 편을 갈라 놀기도 했어. 편을 나누다가 아이들 수가 안 맞아 홀수가 되면 누군가가 깍두기가 되면 되었지.


근데 왜 깍두기란 말이 나오냐고? 깍두기를 갖고 오는 사람이냐고? 배추김치, 열무김치, 물김치, 총각김치 다 있는데 왜 깍두기냐고? 그러네. 깍두기라는 명칭이 왜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깍두기를 잘 담그는 사람이 고무줄도 잘해서 그리된 건 아닐까? 믿거나 말거나지. 아무튼 편을 나누다가 한 사람이 남으면 그 사람이 깍두기가 되는 거야. 나는 그럴 때 거의 깍두기가 되었어. 고무줄놀이를 아주 잘했거든. 내가 가는 팀은 꼭 이겼지. 짝이 모자랄 땐 아이들은 나를 깍두기를 시켰어. 그래서 가끔은 아이들이 짝이 안 맞길 은근히 바라기도 했어. 왜냐하면 이쪽저쪽을 다 할 수 있게 되니까 말이야. 나는 집에 있을 때도 대문과 마루 기둥에 고무줄을 묶어 놓고 혼자서도 잘했지. 난 놀기 대장이었거든.


고무줄놀이는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서서 고무줄을 잡고 있으면, 상대방 팀이 발 밑에서 시작해서 종아리, 무릎, 허벅지, 허리, 가슴, 머리, 맨 나중엔 손을 완전히 뻗어 손 끝에 고무줄을 잡을 때까지 하면 끝나는 놀이만 생각나. 다른 것도 있었는데 말이야. 노래는 "무찌르자 공산당 몇 해 만이냐" 뭐 이런 노래였는데, 여기까지 밖에 생각 안나네.


어제 여기까지 글을 쓰다가 노래가 생각 안 나서 글을 쓸 수가 없었어. "무찌르자 공산당 몇 해만이냐"만 하루 종일 맴도는데 나중엔 내 입을 틀어막아도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에구! 가사나 좋아야 음미하지. 안 부르려 해도 자꾸 나와서 나중엔 노래 가사를 "뭐드라 뭐드라 뭐어어드라"로 바꿔 부르기도 했지.


잠자리에 들어서도 이 노래를 불러댔지. 나는 침대 위에서 고무줄 하는 것처럼 발로 허우적거리며 노래를 계속 불렀어.

마치 63년 전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 착각에 빠진 것 같았어. 아마 누가 보았다면 뭐 하고 있느냐고, 다리가 아프냐고 물었을 거야. 그래. 난 어린 날의 고무줄 하던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고무줄 하던 것처럼 발을 허우적거렸지. 내가 나한테 최면을 걸은 걸까? 처음 느껴보는 일이었어. 입으로는 "무찌르자 공산당 몇 해만이냐"를 부르고 한 발로는 높이 올려 있는 고무줄을 잡아당겨 가랑이 속으로 넣고 돌아오고, 또 "무찌르자 공산당 몇 해만이냐"를 계속 반복하고 돌아오고 있었지.


근데, 자면서 꿈을 꾸었나 봐. 내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치마는 팬티 속에 집어넣은 모습으로 머리는 휘날리며 고무줄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골목길 기억 너머에서 너무나 생생한 모습으로 오른발로 고무줄을 끌어내려 다리 사이에 넣고, 왼발 오른발로 스텝 밟고 술레 뒤를 돌아 반대편으로 가서 다시 다음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당연히 노래를 몰라 멈출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훅 하고 바람이 내게 온 것처럼 다음 동작과 함께 63년 전 불렀던 노래 가사가 입으로 터져 나왔지 뭐야!


"무찌르자 공산당 몇 해만이냐

대한으로 가는 길 저기로구나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는 한 명에서 두 명으로 세 명으로 자꾸 길어져 마치 기차처럼 보이는 아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스텝도 정확히 맞추며 고무줄 잡고 있는 술래의 주위를 돌고 있었어. 정말 묘한 경험이었어. 이 묘한 감정 때문에 새벽 3시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노래 가사 잊어버릴까 일어나 적으려 해도 일어나 지지가 않고, 잠을 자려해도 잠이 오질 않았지.


경주 읍성 골목길 펜화 by빈창숙


어릴 적엔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책상 서랍에 들어있는 고무줄 뭉치를 손에 잡고 있다가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재빨리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고무줄놀이를 할 장소를 먼저 차지하곤 했지. 안 그러면 아이들이 몽땅 나와 놀면 고무줄 할 장소가 없었어. 그런데 어떤 놀이를 하더라도 훼방 노는 사내 녀석들은 있잖아. 그 녀석들은 서너 명씩 어디선가 나타나서 우리들이 놀고 있는 고무줄 가운데를 배에 대고 그냥 달리는 거야. 고무줄을 안 뺏기려 양쪽 끝에 있는 친구들이 안감힘을 쓰고 버티다가 고무줄이 팽팽해지면 고무줄을 손에서 놔야 했어. 왜냐하면, 고무줄을 놓지 않으면 고무줄이 끊어져 툉기면서 잡고 있던 손과 머리, 얼굴 등 온몸을 휘감아 정말 욕이 나올 만큼 아프거든. 그전에 고무줄 잡고 있던 손을 놓아야 해.


고무줄을 빼앗기면 고무줄이 아까워 달리는 녀석의 뒤통수에 대고 발 동동 구르며 소리만 지르는 거야. "너 우리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나쁜 자식아" 어쩜 이보다 더 심한 욕을 했을지도 몰라. 그러나 씩씩거릴 뿐 엄마한테 일러도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 나는 엄마의 반짇고리만 호시탐탐 노렸지. 엄마의 반짇고리엔 항상 검정 고무줄이 묶음으로 있었거든. 내 눈이 조금 더 커질 수 있었는데 더 안 커진 것은 혹시 옆으로 가재 눈을 하고 반짇고리에서 고무줄을 노려서일까. 지금이라도 다시 눈을 위로 천천히 떠야겠다. 고무줄을 노리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고무줄놀이를 하면 꼭 끊어가는 녀석이 있었어. 같은 학년이라는 것만 알았지. 이름도 모르고 이야기도 한 번 안 해본 아이였어. 그땐 워낙 아이들이 많았지. 한 반에 65명에서 70명 정도로 같은 반 아이들 하고도 다 얘기를 못했지. 그 아이는 내가 고무줄놀이만 하면 어디서 보고 있었는지 잽싸게 다가와 고무줄을 낚아채곤 했어.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잡을 수도 없었어.


5 학년 봄이었어. 몇 번이나 고무줄을 빼앗기고 그날은 그 녀석을 피해 운동장 뒤편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데, 정말 쏜살같이 날아와 그 녀석이 또 고무줄을 자기 배에 대고 냅다 달리는 거야. 나는 더 이상 고 무줄을 빼앗길 수 없어 잡고 함께 뛰었지. 녀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는데 고무줄이 팽팽해져서 더 이상 달릴 수 없어 내가 멈추려는 순간, 그 아이가 끌고 간 고무줄이 끊어지며 튕겨 나의 얼굴과 손과 가슴을 휘감아버렸지. 아불싸! 고무줄은 세차게 튕겨 나오면서 얼굴과 머리칼을 쥐어뜯고 손등과 가슴에 불에 덴 듯 뜨거운 고통을 주었지. 순식간에 일어났어.

난 그대로 넘어졌고, 눈퉁이는 밤탱이가 되고, 입술은 터져서 훌러덩 뒤집혔고 고무줄이 세게 닿은 뺨은 지렁이가 서너 마리 즈음 붙어있는 모습으로 부어오르기 시작했어. 천둥 번개가 나를 치고 가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하면 조금 맞을지 모르겠어.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게 집에 오니 엄마는 내 모습을 보고 "아고, 눈깔 안 다친 게 다행이네. 어떤 놈의 새끼냐?" 하며 막내 동생 젖 주시면서 눈깔 안 다쳐 다행이란 말만 하셨고, 할머니는 찬수건을 얼굴에 대주시며 "가자, 가자, 그놈의 집으로 가자." 하셨지만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 집을 알 수가 없어 더 억울했지. 근데 말이야, 그때처럼 눈깔사탕이 맛이 없었던 적은 없었어. 입 속에 다 넣지도 못할 정도로 큰 눈깔사탕을 좋아하던 나를 할머니가 울지 말라고 사탕 하나를 입어 넣어 주셨는데 입안이 쓰라려 침만 질질 흘리고 뱉지도 못하고 울었지. 눈깔사탕이 너무 커서 그런가 하고 할머니께서 망치로 사탕을 깨 주셨지만 사탕을 먹을 수가 없었어. 더군다나 눈깔사탕을 보면 자꾸 내 눈을 만지게 됐고 울면 눈이 쓰라려 눈물이 나고, 가슴도 결렸고 손등도 부어 마치 나는 외계인 같았어.


아침이 되니 나의 얼굴은 더 부어서 눈도 안 떠졌지만 학교는 결석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엄마와 할머니의 배려 아닌 배려로 학교는 가야만 했지.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몽땅 운동장으로 나가고 나만 혼자 교실에 남아 유리창 너머로 아이들 노는 것을 보고 있는데, 소리도 없이 그 아이가 한 손에 우리 엄마 겨울에 스웨터 뜨려고 감아 놓은 동그란 털실처럼 생긴 터실터실한 검정 고무줄 뭉치를 들고 내 앞에 서있는 거야. 놀랐지. 무슨 말인가 해야 되는데 말은 안 나오고 가슴만 쿵쿵 뛰었지.


툭 튀어나온 입술과 부어서 눈도 안 떠지는 눈과 얼굴은 고무줄이 튕겨와 부풀어져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과 같은 나의 빨간 뺨을 보고는, 순간 그 아이의 눈에서는 놀라움과 동시에 눈물이 주르륵 흘리는 거야. 갓난아이의 머리통만 한 고무줄 뭉치를 내게 내밀면서 "미안해. 아프게 하려는 것은... 아 니 였 어" 하면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정말 황소 눈물만큼이나 큰 눈물을 줄줄 흘렸지. 나는 고무줄 뭉치를 받고 덩달아 같이 울고 있었어. 만나면, 잡히면, 울 엄마한테 다 일러줄 아이였는데 말이야.


그 아이는 그렇게 가버렸고 밉던 마음이 사라졌어. 그러나 밤탱이가 된 나의 눈과 훌러덩 까진 입술은 오래갔지. 그 뒤 그 아이는 한동안 학교 끝나면 교문에 서 있다가 내가 나오면 보일 듯 안 보일 듯 따라오다가 내가 우리 집 골목으로 들어가면 발걸음을 돌리곤 했지.


그리곤 잊혔어.

근데, 그 아이는 미안해서 울었을 테지만 나는 왜 울었을까?

그 아이도 나처럼 이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요새 아이들 말로 내게 썸 탄 건 아니었을까?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살아있기만 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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