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이야기는 내가 저지른 일 중에서 가장 완전범죄로 끝난 이야기야. 생각해보니 지금부터60년 전일이라 공소시효도 지났겠다이제 밝혀도 아무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고백한다. 2021년에.
연필화, 참새 by빈창숙
나 어릴 때 우리 집에서는 새를 키웠어. 하얗고 부리가 빨간 백문조는 정말 예쁘고 날렵했어.이름처럼 귀티가 난다고 할까. 잉꼬는 연둣빛 날개를 갖고 있었는데 백문조 보다 크고 씩씩한 모습이었어. 십자매는 미안하지만 귀티도 나지 않고 날개 색깔도 특별히 이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갈색이었어. 그런 십자매는 굉장히 부지런해서 새장 안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계속 퍼드득 거렸지.
우리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새장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곤 했어. 새들은 우리들보다 부지런해서 항상 먼저 일어나 있었거든.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새장을 둘러보시다가 환호성을 질렀어. "아고! 십자매가 알을 낳았네. 얘들아 십자매가 알을 낳았어." 우리는 쪼르르 새장 앞으로 가서 보았지만 십자매는 둥지에 앉아 있어서 알을 볼 수가 없었어.엄마의 환호성과 함께 어미새는 둥지 속으로 쏘옥 들어가 버린 거야. 그러나 나중에 둥지 속에 있는 정말 조그만 알을 보았지. 십자매 알은 작고 정말 예뻤어.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꼬물거리는 십자매 새끼들이 둥지에 있는데 우리 남매들은 놀라움과 신기함에 날마다 새장 앞에서 십자매 새끼들이 커 가는 것을 보았어.
서로 새장 앞에서 "네가 가운데 앉아 있으니 새끼가 안보이지. 조금만 비켜 봐. 언니, 막내가 안 비켜."라고 둘째 동생이나한테 일러도 막내는 "잉! 잉!" 소리만 낼뿐 비켜주지 않았어. 그리고 나면 가끔은 둘째 동생의 손이 막내 머리로 가거나 발로 엉덩이를 차면 한바탕 전쟁이 나곤 했지. 또 막내는 언니나 오빠가 먼저 새장 앞에 있으면 "잉! 잉!" 거렸고, 그 소리에 동생들은 결국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는 못 배겼지. 새장 앞에 앉아있던 동생들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 막내는 더 큰소리로 "잉! 잉!" 거렸고, 그러면 엄마는 내게 동생들 안 보고 뭐하냐고 나만 혼났지. 항상 뒷전인 내가 엄마에게 "엄마는 막내만 이뻐하구." 라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항상 엄마가 하는 얘긴 똑같았어. "너는 다 컸잖아. 언니잖아."하지만 나도 고작 열 살이었는데말이야.
막내란 말은 막무가내가 줄어서 막내가 된 게분명해.
우리들은 막내와 엄마가 없을 때, 할머니께서 낮잠 주무실 때, 슬쩍 새끼를 한 마리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좋아라 했지. 새끼는 털도 나지 않은 게 아주 작았고 가만히 있었어. 나는 동생들에게도 한 번씩 손바닥에 올려주었고, 손에 들린 새끼 새는 모이를 한 두 알 입에 넣어주면 잘 먹었어. 낮잠을 주무시다 일어나신 할머니께서 "새끼를 자꾸 손에 올려놓으면 손독이 올라 죽는단다. 어여 에미에게 돌려줘라."라는 말씀에 우리들은 놀라 다시는 새끼 새를 새장에서 꺼내지 않았어. 새끼 새들이 금붕어처럼 죽을까 봐.새를 키우기 전에 금붕어를 키웠었는데 금붕어가 자꾸 죽었던 적이 있었거든.
근데, 이 십자매들은 부부 사이가 좋았나 봐. 어찌나 알을 잘 낳는지 또 얼마나 빠르게 자라는지 원하는 골목 친구들에게 엄마는 언제든지 십자매 한 쌍씩 주셨어.그래도 십자매는 알을 자꾸만 낳았지.
4학년 어느 가을날 엄마와 할머니 모두 시장을 가신 날, 나는 집을 보느라 친구들을 서너 명 불러 소꿉장난을 했어. 집에서는 소꿉 재료를 할 게없었어. 그러다 우리들은 새소리에새를 구경했지.
"얘들아, 새알도 먹을 수 있니?"
"글쎄, 몰라. 안 먹어 봤어."
"어떻게 먹어?"
"달걀 프라이!"
나는 재빨리 새장 안에 손을 집어 넣어 새알을 친구 수만큼 꺼냈지. 행여 엄마가 나타날까 가슴은 두근두근 거렸고 떨리기도 했지만, 얼른 병뚜껑을 돌멩이로 두들겨 납작하게 만든 소꿉장난 접시 위에 십자매 알을 깨서 올려놓았어. 나는 십자매 알의 노른자위를 동그란 모양 그대로 접시 위에 올려놓았지만 한 친구는 노른자위를 터트리기도 했지. 십자매 알은 병뚜껑 접시에 딱 맞는 크기였어.
어쩜, 이리도 딱 맞을 수가 있었을까!
연탄 불은 부엌 아궁이 속에 있었어. 불을 때는 아궁이가 아니라 아궁이 안에 원기둥의 통이 들어 있었는데, 이 통 안에 연탄이 2장씩 들어 있었어. 엄마는 연탄을 갈 때에는 아궁이 안에 있는 연탄 통의 아래쪽 고리에 긴 쇠막대기 갈고기를 끼웠어. 그리고 살금 앞으로 끄집어내면 연탄 통은 아래 밑바닥에 바퀴가 달려 있어서 스르르 굴러 나왔지.
엄마는 이 연탄 통을 레루식 연탄 통이라 불렀어. 밥을 할 때는 이 레루식 연탄 통을 솥이 있는 아궁이에 놓으면 되었고, 겨울이면 아궁이 깊숙이 밀어 넣어 방 구들장을 데웠지. 또 여름엔 통 위 양 옆에 동그랗게 손잡이 쇠줄이 달려 있는 줄을 잡고 마당에 놓기도 하셨어. 연탄 위에는 동그란 쇠뚜껑이 덮여 있었는데 가운데 한 부분이 조금 볼록하게 위로 나와 있었고 아주 작은 동그란 숨구멍이 그 위에 나있었어. 엄마는 연탄불을 오래 가게 하기 위해서 여름엔 연탄 위에 쇠뚜껑을 덮어 놓곤 하셨지.
우리들은 부엌으로 들어갔고, 나는 쇠막대기 갈고리를 연탄 아래 고리에 끼워 연탄 통을 끄집어내었어. 엄마가 했던 것처럼. 쇠뚜껑 위에 재빠르게 십자매 알을 깨트린 병뚜껑 접시를 올려놨지. 어찌나 손이 빨랐던지 마치 몇 번이나 해 본 것같았어. 아마 소꿉장난하면서 돌멩이 위에 접시 올려놓고 요리를 하는 척하며 놀아서였나 봐. 친구들도 덩달아 가지고 있던 병뚜껑 접시를 올려놨지.
잠시 후 정말로 할머니와 아버지께서만 주로 드시던 그 모양 그대로 십자매 알은 익어갔던 거야. "그래. 이 모습이었어." 나는 속으로 말했어. 연탄 불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아 있던 친구들은 한마디도 안 했어. 아니 못했지. 십자매 알이 익어가는 모습은 우리들에겐 처음이었고, 신기했으며 알을 훔쳤다는 생각보다 프라이를 했다는 생각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지. 소꿉장난을 하면서 실제로 요리를 해보긴 처음이었으니까. 우리들은 엄마에게 들킬까 봐 아무도 말 안 하고 얼른 먹었어. 먹을 것도 없는 어른 엄지손톱만 한 작은 알을 게눈 감추듯이 순식간에 먹었지. 십자매 알은 작아서 그냥 한 입도 안 됐으니까. 십자매 알 맛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얘기 안 했어.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모두 집으로 갔지.
그 이후 나는 새장 안의 십자매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곁눈으로만 보았어. 십자매가 자꾸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그러나 십자매는 엄마에게 이르지 않았지. 본 자는 있지만 말한 자는 없어서 완전범죄가 된 거지.
그 이후 엄마와 할머니가 함께 시장을 다녀오시며 집을 보라고 하시면 아주 좋아했어. 십자매 알이얼마나 있나 날마다 보고 있던 차에 두 분의 외출은 기다리던 참이었으니까. 십자매 알은 우리가 4~5알씩 꺼내 먹어도 늘 있었어. 십자매한테 똥을 많이 싼다고 대놓고 싫다 했는데 십자매가 똥을 싸도 괜찮다 했지. 물론 친구들에게도 비밀을 발설하면 다시는 십자매 알을 못 먹을 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도 해대며 서로의 의리를 다지느라 새끼손가락을 먹을 때마다 걸었지. 그리고 가을로 접어들며 자꾸 불어나는 새장과더불어 마루에 널브러진 신문에 쌓이는 새똥과 새털로온 식구가 마루에서 밥을 먹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집에 오니 마루에 하나 가득했던 새장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어. 새장에 점령되어 살다 보니 겨울 되면 창문도 못 열어 놓는다며 엄마가 새장을 몽땅 새장수 아저씨에게 되팔아버렸다는 거야. 나는 십자매 한 쌍만이라도 남겨 놓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지. 지은 죄가 있어서였나 봐. 이렇게 나의 십자매 알 서리는 완전범죄로 끝났어.
근데, 나는 살아오면서 자꾸 날고 싶어 했어. 나비의 날개도 부러워하고, 참새의 날개도 부러워하고, 나중엔 빗자루 타고 다니는 서양의 마녀도 부러워했지. 그리고 등의 날개 죽지가 뻐근하다거나, 겨드랑이가 근질근질거리면 "날개가 나오려나!" 하는생각도 들었어. 혹시 이 모든 것은 그때 내가 먹은 십자매의 알 속의 DNA가 지금까지 남아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때, 엄마가 새장을 되팔지 않았다면 난 소꿉놀이 요리에 맛들려 셰프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