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 누면 석필이 생긴다고?

골목 안의 기억들

by 빈창숙

60년 전의 나의 기억.


어릴 적 학교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은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어. 골목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2번째가 우리 집이었거든. 골목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아이들의 까르르하는 소리는 골목을 가득 메웠고, 나는 놀 생각만 하면 발걸음은 달리기 선수처럼 빨라졌지. 늘 놀 생각만 하면.


마루에 가방을 휙 던져 놓고 나가는 일은 어쩜 내가 하는 일 중에서 제일 빨랐을 거야. 엄마는 내가 숙제를 뒹굴거리며 하면, 놀러 나갈 때처럼 하라고 하셨거든.


어느 날인가 친구가 석필 하나를 가지고 왔지. 그 석필은 하얀 돌이었는데, 분필처럼은 아니었지만 시멘트 바닥이나 담벼락에 썩썩 문질러대면 글씨도 써지고 그림도 그려지는 이상한 마술 같은 돌이었어. 오빠가 준거래.


아, 왜 내겐 그때 오빠가 없었을까?


며칠 동안 모든 놀이는 멈추었고 우리들은 석필을 한 번만이라도 써보려고 알랑방귀를 뀌어대곤 했지. 석필 가진 친구는 "조용히 하는 사람에게 빌려준다." 하면 모두 입을 다물었고, "저 담벼락까지 뛰어 제일 먼저 들어오는 사람에게 빌려준다." 하면 발이 불이 나게 달리곤 했지. 가진 자의 횡포가 시작된 거지.


언젠가부터 우리들은 그 석필이 시시하다고 했지. 사실은 갖고 싶으면서도 마치 따 먹을 수 없는 포도를 시어서 못 먹는다고 한 여우처럼. 석필을 혼자 갖고 있는 친구도 심심했던 거야. 아무도 그 석필을 부러워하지 않았으니까. 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고 하면 어울릴까? 역시 사람은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 친구도 알게 된 거지.


그 친구는 오랜 망설임 끝에 오빠에게 들은 석필의 비밀을 털어놓았고, 우리들은 즉석에서 석필 제조 팀을 만들었어. 그 골목에서 이처럼 마음이 맞기는 아마도 처음이었을 거야. "땅을 파고 돌멩이를 넣은 뒤 다시 흙을 덮고서 오줌을 계속 누면 한참있다가 석필이 된데." 이렇게 쉬운 일이.


그날로 우리들은 우리 집 담벼락 밑을 파고 돌멩이를 묻었어. 어둑어둑 저녁때까지 놀다가 집에 가기 전 모두 모여 무슨 의식이라도 하는 듯 모여 오줌을 누었어. 행여 오줌이 옆으로 샐까 조준도 잘하였지.


일주일이 가고 보름이 가고 날은 소풍날 받아 놓은 것처럼 더디갔지. 엄마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었어. 초조한 마음에 "그만 됐을까?" 물으면 "오래 있어야 한대."라고만 했지 언제까지 라고는 말을 안 하는 거야. 나는 냄새에 애타고 , 석필은 갖고 싶고.


냄새는 맡지 않으려 해도 찌렁네가 온 골목을 쥐고 흔들었어. 엄마는 쥐가 죽었나 쥐 덫을 담벼락 밑에 갖다 놓기도 했지.


어느 날 놀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척척 알아서 망도 봐주며, 계집애들은 엉덩이를 드러내고 사내 녀석들은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누고 있는데 엄마의 싸리빗자루가 날아왔어. 마치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마녀처럼 날아와서 우리 모두를 빗자루 속에 가두었지.


그날 이후 우리 집 담벼락은 파헤쳐졌고, 할머니의 강력한 말씀에 엄마는"오줌 누기만 해봐라"라는 종이를 담벼락에 붙였지. 내게는 외출금지령이 내려졌으며 오줌에 쩔은 불쌍한 돌멩이는 빈공터에 널브러져 있었고, 석필의 꿈은 바람 따라 아예 날아가 버렸지.


그때 석필만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나는 퀴리부인의 뒤를 이었을 수도 있었는데...


아, 우리들의 석필!



경주 읍성 골목의 감나무집 펜화 by빈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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