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올해 나는 일흔 살이 되었어. 일흔 살이 되고 나니 내 나이가 갑자기 많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 그러면서 나의 젊은 날을 뒤돌아보니 마치 70년의 시간이 1년 정도의 시간으로 후다닥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어. 그러면서 앞으로의 삶 또한 빠르게 가 버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
근데, 일흔이 되었다고 별 특별나게 일상이 바뀐 건 없더라고. 어제도 했고, 일 년 전에도 했던 일들을 오늘도 하고 있을 뿐이었어. 밥도 하고, 걷기도 하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똑같았어. 한 가지 더 좋은 건 모든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내가 그 시간을 다 쓸 수 있다는 거였지. 그 이유는 나의 아이들이 다 자라 내 둥지를 떠나 각자의 둥지를 만들어 독립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 그래서 하루 스물네 시간이 오롯이 내 손에 있게 된 거야.
나는 이제 내 삶을 되돌아볼 여유도 갖게 되었고, 나의 앞날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되었지.
사람들은 모두 살아온 이야기가 있어. 나 또한 '70년을 살아오며 있었던 이야기들을 글로 적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어.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추억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아이들에겐, 할머니 세대가 살았던 이야기들 속에 그때를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지.
지금 내 나이 '칠십은 마음이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해. 마음이 가는 내 기억 속의 이야기들을 꺼내 볼게.
나의 첫 번째 기억은 세 살 터울인 동생이 넘어져 얼굴이 빨개지며 숨도 못 쉬고 캑캑 거리며 '경기'를 하던 모습이야. 그때 동생은 돐 전이었고 나는 네 살이었지. 넘어져 숨도 못 쉬고 있던 동생과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던 이때의 기억은 그냥 흑백 사진 한 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어.
그리고 두 번째 기억이 바로 별사탕 기억이야. 65년 전 인가 봐. 아침부터 우리 집은 부산했어. 엄마는 나를 제일 먼저 씻기고 꼬까옷을 입혀 주셨어. 평상시는 건빵 다섯 개와 별사탕 두 알씩만 주시던 것을 그날은 한 봉지 통째로 내 손에 쥐어 주셨는데,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였지. 나는 건빵이 봉지째로 내게 온 것에 대해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고, 바로 밑의 동생에게도 똑같이 건빵 한 봉지가 손에 쥐어져 있는 거야. 이상했지.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잠시 후 동생은 친할머니를 따라갔고, 엄마는 나를 우리 집에 늘 오시는 어른 손에 맡기며 놀다 오라고 하셨어.우린 강가로 놀러 갔어. 강가에는 모래와 조약돌이 많이 있었고얕은 물속을 걸어 다녔어. 물속엔 작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고 나는 조약돌을 쌓으며 놀았지. 따사로운 햇빛이 있었고, 갈대숲이 있었던 그 강가를생각하면 나는 커서도 별사탕이 생각나곤 했어.
그리고 이 강가의 모습이 생각나면 늘 이 노래를 부르곤 했지.
내 아이들 업고 재울 때도.
내 손주들 업고 재울 때도.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들에는 바짝이는 금 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신발 벗고 물에 발 담그고 소꿉장난을 했어.
건빵 여러 개 먹고, 별사탕은 한 개만 먹고.
집에 있을 땐 동생과 건빵을 먹으며 별사탕을 서로 더 먹겠다고 하면 엄마는봉투 속에 있는 건빵과 별사탕을 그릇에 다 쏟아 놓고, 별사탕은 각각 2개씩만 주셨어. 안 그러면 별사탕만 골라 먹고 건빵은 안 먹으니까. 봉투 안에 건빵은 많이 들어 있었는데 왜 별사탕은 고작 네댓 개 밖에 들어 있지 않았을까?
건빵은 먹다가 목이 메면 작은 별사탕 하나 입에 넣고 가만히 있으면, 달콤만 물이 입 속에서 생겨 어느새 건빵은 쑤욱 목으로 넘어갔어. 별사탕은 아기 손톱만 한 것이 요술 사탕이었나 봐. 나는 그 별사탕이 너무 예뻐 먹지도 않고 손에 들고 있곤 했어. 그러면 별사탕은 녹아 내 손을 뿌짓뿌짓하게 만들었고 난 별사탕도 못 먹고 엄마한테 야단맞곤 했지.
나는 골목에 나가서 놀 수가 없었어. 엄마의 배는 뚱뚱해졌고 자꾸만 동생을 돌보라 하셨지. 함께 놀다가도 동생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넘어졌고, 그러면 '경기'를 했던 거야. 그럼 엄마는 동생을 잘 못 보았다고 나한테만 뭐라 하셨지.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도 동생은 나만 졸졸 따라다녔어. 그러다가 '경기'를 하면 큰일인데. 그러면 대문 앞에 앉아서 아이들 노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지. 아이들은 우리 집 대문 앞에 모이고 나는 건빵을 나누어 먹곤 했어. 엄마는 대문 밖에서동생을 데리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건빵을 그릇에 넉넉히 담아주셨지.
강가에서 처음으로 혼자 독차지한 건빵에 들어 있는 별사탕은 입이 헤 벌어지리 만큼 좋았어. 빨리 먹을 필요도 없었고, 깨물어 먹을 필요도 없었고, 동생과 싸울 일도 없었어.
물가에 앉아 갖고 온 건빵과 별사탕을 작은 돌멩이 위에 올려놓고혼자 소꿉놀이를 했지.하얗고 작은 별사탕은 햇빛에 반짝였고, 내 마음도 별사탕 따라 반짝이는 것 같았어.
4월의 봄이었으니까!
이리저리 물고기 떼 따라다니다가 돌아오니 건빵을 올려놓은 돌멩이가 쓰러져 건빵은 물에 불어 있었고,
애지중지 여긴 그 맛난 별사탕은 온 데 간데 없어진 거야.
아무리 찾아도 별사탕은 없었어.
아줌마에게 다가가 별사탕이 없어졌다고 하며 울었더니, 아줌마는 내가 놀던 물가로 오셔서 보시더니 웃으시며
"별사탕이 물에 녹았구나!" 하셨지.
아까운 별사탕은 겨우 하나 먹고 남겨 두었는데 어디로 간 것이었을까! 나의 조그마하고 하얗고 예쁜 별사탕은 집에 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어.
펜화, 경주 골목의 집. by 빈창숙
얼른 엄마에게 달려가 별사탕 없어진 얘기를 하려는 생각만 가득했어. 집에 돌아와 대문으로 들어가려는데, 검정 숯과 빨간 고추, 풀 같은 것이 새끼줄에 묶여 대문에 걸려 있는 거야. 나는 집을 잘못 온 줄 알았는데, 골목엔 아주머니들이 서성이며 "아기를 낳았네." 하시며 좋아하셨어.
그 시절엔 모든 엄마들이 거의 집에서 아기를 낳았고, 아기를 낳으면 볏짚으로 꼰 새끼줄 사이사이에 검정 숯과 빨간 고추 그리고 소나무 가지 하나를 엮어 대문에 가로로 길게 걸어 놓으셨어. 아기를 낳았다는 뜻으로 아기 엄마나 아기를 위해 조심하자는 뜻이 있었던 거야. 이 새끼줄은 거의 삼 칠일 즉 스무하루 동안은 대문에 걸려 있었고, 상인들이나 이웃들도 출입을 자제하라는 뜻이 있었지.
나는 없어진 별사탕 생각에 엄마에게 얘기하려고 툇마루에 올라 "엄마아!" 하고 부르며 미닫이 문을 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