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전대 앞, 한증막 앞, 극장 앞, 지서 앞, 목욕탕 앞, 장승배기, 삼거리 시장, 상도 입구, 노량진 역, 노량진 극장, 사육신 묘, 노량진 본동 앞,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 용산 역, 삼각지, 삼각지, 삼각지.
내 학교 앞 버스정거장!
57년 전인가, 그러네, 올해가 2021년이니 반세기도 넘었네. 내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 '세기'라는 단어를 쓰니, 마치 내가 오래된 항아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유약을 바르지 않은 투박한 항아리.
그래, 나는 항아리였어. 그 항아리는 처음엔 아주 작았지만, 나이를 먹을 때마다 항아리도 함께 커졌어. 항아리 속이 비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 나는 그 항아리 안에 꽃도 담았고, 웃음도 눈물도 괴로움도 모두 담았지. 또 도전도 용기도 꿈도 담았어. 항아리는 계속 커지고 있고 지금도 나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언젠가 내가 하늘의 꽃이 되면 항아리는 나를 담아 땅에 묻어줄 거야. 나의 모든 기억과 함께.
57년 전 내 아버지와의 기억을 항아리 속에서 꺼내 볼까? 난 13살이었고, 중학교에 버스를 타고 다녔지. 걸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벗어나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된 것은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흥미로운 일이었어. 그러나 50분 넘게 버스를 매일 타고 학교에 가는 일은 아주 힘들었지. 난 키도 작고 몸도 가냘픈 이이였거든. 키 작은 아이부터 순서로 번호를 매기는데 난 앞에서 네 번째였어. 그래서 4번이었지.
내가 버스로 등교하는 걸 친할머니께서는 온종일 살얼음을 걷다가 온 것처럼 불안해하셨어. 한 번은 비바람이 몹시 부는 날 한 손에 우산을, 또 한 손에는 유난히도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서 보니, 내가 넣지도 않은 두꺼운 책이 2권이나 있는 거야.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거지. 집으로 돌아올 땐 가방이 너무 무거워 땅에 질질 끌며 왔어.우리집은 학교에 갈땐 내리막 길이라서 좋은데, 학교에서 집에 올 땐 오르막길이라서 평상시에도 아주 힘들었거든.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에구, 내 새끼 , 바람에 안 날아가고 집에 왔네." 하시며 반겨 주셨지만 난 엉엉 울었지. 그때부터 난 바람이 불면 내 책가방을 끌어안고 자는 버릇이 생겼어. 할머니께서 몰래 책 넣으실까 봐.
1 학년 봄 소풍 때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와. 태릉으로 소풍을 갔었는데 어찌나 멀고 힘들었던지 발이 부르트고,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그대로 땅에 주저앉아 훌쩍거리고 울고 있었거든. 그랬더니 체육 선생님께서 "아이고, 공주님" 하시며 아버지처럼 내게 업히라고 등을 대 주셨고,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선생님 등에 업혀 내려왔지.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로 올라가서도 나의 체육 선생님이 되셨고 가끔 "업어주랴, 쑥쑥 컸네." 하시며 나를 놀려 먹곤 하셨지.
아버지는 군인이셨어. 아침마다 아버지의 전령 운전사 아저씨는 군용 지프차를 몰고 집 대문 앞으로 오셨지. 아버지는 잘 다려진 장교복과 파르스름하게 깎은 머리에 장교 모자를 쓰시고 지프 치를 타고 출근을 하셨어. 그 모습은 내 눈엔 정말 멋있었어. 아버지께서 타고 다니시는 군용 지프차는 겨울에는 뚜껑이 있었지만, 여름엔 뚜껑이 없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보이는 군용 지프차였지. 난 여름에 뚜껑 없는 지프차를 타고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했어. 아버지의 멋진 모습이 좋았거든.
1학년 초봄이었지. 초봄인데도 여름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내리던 날 나는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버지의 지프차가 정거장 바로 옆에 멈춘 거야. 우산에 가려 있었는데도 아버지는 딸의 모습을 알아보셨나 봐. 그 많은 사람 중에 또 우산을 모두 쓰고 있는 상황에서 나를 어떻게 알아보셨을까? 아버지께서는 그날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셨어.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나에게 지프차를 타라고 하신 적이 없으셨는데.
이렇게 나는 그날 처음 아버지의 지프차를 타게 되었지.그 이후 비바람이 부는 날이거나내가 아플 때 손가락에 꼽을 만큼 지프차에 태워주셨어. 어쩌면 할머니의 입김이 작용했을지도 몰라. 할머니 눈엔 내가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손녀딸이어서 불안하셨는가봐. 아버지의 근무지는 내 학교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되었기에 일부러 나를 데려다 주신 건 아니었지. 그러나 2학년 올라가면서 나는 아버지의 지프차를 타는 걸 싫어했어. 아니, 싫어했다기보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어울릴거야.
1학년 때는 아버지의 지프차를 타고도 내가 남들에게 보이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몰랐거든. 2학년이 되면서는 어쩌다 한 번씩 타는 것도 부끄러웠어. 겨울엔 괜찮았는데 여름엔 뚜껑 없는 지프차를 타고 앉아 있는 게, 마치 벌거벗고 있는 느낌이었고,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어. 신호등이나 정거장에서 멈추어야 할 땐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을 했지. 아버지의 멋진 모습은 내보이고 싶었으나 나는 자꾸 숨고 싶었어. 더군다나 만원 버스 속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친구와 눈이 마주치게 되면 난 죄를 지은 것 같았어. 그 친구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었지만, 나는 나 혼자 편하게 아버지 차를 타고 가는 것이 만원 버스에서 숨도 못 쉬고 타고 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했어. 아버지는 군인이셨지만 그 차에 앉아 있는 나는 군인이 아니었거든.
3 학년 올라가서 중간고사가 있었던 날 나는 그만 아팠던 거야. 시험은 치러야 하니 부득이 아버지의 지프차를 타고 가게 되었지. 만원 버스는 내가 탔을 때나 내가 타지 않았을 때나 똑같았지. 매일 장이 서는 장날 같았어. 버스가 급정거하면 사람들로 꽉 찬 버스 속에서 생판 모르는 까까머리 남학생의 팔을 잡기도 하고, 냄새나는 가슴팍에 머리를 쿵 박을 때도 있었어. 그건 다반사였어. 그러면 끼득끼득 남학생들은 좋아라 했고 여학생들은 닭 모가지 비트는 소리를 내곤 했지.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못 내리고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리고는 억울해서 울면서 학교에 가기도 했어. 그러면 지각했다고 손바닥을 맞는 건 더 억울해서 울었지. 또 나는 내렸는데 내 가방을 뺄 수가 없어 혼자 밀려 내리고는 "내 가방, 내 가방." 하고 울며 발을 동동 구르면, 주인도 없이 사람들 다리 사이에 홀로 껴있던 가방을 누군가가 창문으로 던져주던 일도 있었지.
버스는 더 이상 태울 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을 태우고 문이 닫히지도 않았는데도, 차장 언니의 "오라 잇" 소리와 함께 버스 옆을 탕 탕 두드리면, 마음이 잘 맞는 한 쌍의 연인들처럼 운전사 아저씨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큰 버스를 S자로 휙 돌렸어. 무슨 곡예사처럼 차장 언니는 뒤돌아서서 버스 양쪽 문틀을 두 손으로 붙잡고, 아직 버스 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사람들을 엉덩이로 안쪽으로 밀어 넣었지. 아,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요술 버스였어. 이렇게 더 이상 탈 수 없는데도 똑같이 반복하면 버스는 고무줄처럼 늘어나 내리는 사람은 없고 타는 사람만 있었지. 이런 버스를 타고 내리면 잘 다려 입은 나의 교복은 마치 금방 비틀어 놓은 빨래처럼 젖어 있고 후줄근했어.
그날, 아버지의 군용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나는 열이 나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었고 똑바로도 못 앉고 비스듬히 앉아 시험이 걱정되어 책만 펴 놓고 있었어. 무슨 책이었는지도 몰라. 신호등에 걸려 멈춰 있는 아버지 지프차 옆에 버스 한 대가 서게 되었어. 그때엔 자리에 앉게 되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책가방을 받아주는 게 상례 었거든.
책가방을 버스 천장만큼이나 쌓아 놓고 앉은 까까머리 남학생이 나를 향해 버스를 두드리며 낄낄거리고 있었어. 한 녀석은 열린 창문으로 손에 쥔 모자를 내게 던지는 시늉을 하고 자기들 까리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었지. 내 아픈 속사정을 모르고 마냥 놀려대는 그 남학생들의 모습에 어찌나 속상했던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니까. 나는 "빨리 가자, 빨리 가자" 연신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 버스는 "같이 가자, 같이 가자." 하는 듯 정거장에서나 신호등 앞에서나 아버지 지프차 옆에 멈추었어. 마치 버스 운전사가 그 까까머리들과 한 패가 된 것처럼.
아침인데도, 대낮 같았고, 빈속은 갈고리로 밭을 갈 듯 쓰걱쓰걱 거렸지. 어제 외운 영어단어들은 내 머리 위에 월계관을 씌워 놓은 것처럼, 천사의 머리 위에나 있는 동그라미를 컴퍼스로 그려 대듯 그려대고 있었어. 나는 동그라미따라 반복해서 학교에 도착하려면 몇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지 세고 있었지.
숭전대 앞, 한증 막 앞, 극장 앞, 지서 앞, 목욕탕 앞, 장승배기, 삼거리 시장, 상도 입구, 노량진 역, 노량진 극장, 사육신 묘, 노량진 본동 앞,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 용산 역, 삼각지, 삼각지, 삼각지.
입에 담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입에서는 꾸역꾸역 정거장 이름들이 나오고 있었어. 마치 할머니의 맷돌에서 나오는 콩비지처럼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