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여자, 내 친할머니!

골목 안의 기억

by 빈창숙

친할머니는 나의 둘째 동생이 태어나면서 우리 집에 오셨지. 나는 엄마하고 자다가 둘째 동생이 태어나면서 할머니하고 자게 되었어. 할머니는 나를 무척이나 애지중지하셨지. 내가 터를 잘 팔아 남동생을 보았다고 말이야. 난 아무것도 팔은 적이 없는데, 숨겨 놓은 눈깔사탕이나 과자를 벽장 속에서 꺼내 주곤 하셨지. 특히 요에다 오줌을 싸서 엄마한테 야단을 맞을 땐 할머니 치마 속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었거든.


그때 내 나이가 다섯 살 때니 1956년도네. 할머니는 내가 자다가 요에 오줌을 쌀까 봐 방에 '요강'을 갖다 놓으셨지. 그러고는 한두 번씩 깨워 '요강'에 오줌을 누이곤 하셨어. '요강'은 동그란 모양으로 하얀 도자기로 된 것도 있고, 쇠로 된 것도 있는데 뚜껑이 달려 있어. '변소'를 갈 수 없을 때 집안에 두고 소, 대변을 보는 일종의 이동식 '변소'라고 생각하면 돼.


나는 조금 더 커서는 오줌이 마려우면 언제든지 '요강'에 오줌을 혼자 누곤 했어. 그런데 초등학교 올라가서는 '요강'에다 오줌을 눌 수가 없었지. 마당 건너 '변소'까지 가야 하는데 밤에 '변소'가는 일은 정말 무서웠거든. '변소'는 마당을 지나 대문 옆에 있었지. 그래도 여름엔 괜찮아. 오줌 마렵다고 하면 할머니는 방에서 문 열어 놓고 계시고, 나는 마당 한가운데 있는 개수대에다 오줌 누고, 큰 물통에 있는 물 한 바가지를 개수대에 버리면 되었거든.


문제는 겨울이야. 겨울엔 개수대에다 오줌을 누면 꽁꽁 얼어버려서 오줌을 눌 수가 없었어. 하는 수 없이 할머니를 깨울 수밖에 없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낑낑거리면 어떻게 아시고 "오줌 마려우냐, " 하시며 함께 일어나 '변소'까지 같이 가주셨지. 할머니는 내게는 큰 언덕이셨어.


할머니께서 무슨 일로 집을 비우시는 날은 '변소' 가는 게 정말 무서웠어. '변소'만 가면 왜 무서운 얘기들은 생각나는지 모르겠는 거야. 꼭 귀신이 나왔지. 달걀귀신, 몽당 빗자루 귀신, 변기 밑에서 빨강 손 파랑 손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 학교에도 구렁이가 있다고 하고 소풍 갈 때 비가 오면 구렁이가 비를 내린 것이라고 했어. 그래서 학교에서도 '변소' 갈 때는 무서워서 꼭 친구하고 같이 가곤 했지. 할머니가 어쩌다 큰집이나 고모네 집으로 잠시 다녀오신다고 하면 나는 손을 붙잡고 안 된다고 했어. '변소'의 귀신 때문에.

할머니와 동생과 함께


할머니는 황해도 황주에서 6.25 전쟁 때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오신 피난민이셨지. 어렸을 때 학교를 못 다니셔서 한글을 깨치지 못한 분이셨지만, 지혜가 있으셨고 현명한 분이셨어. 할머니는 황주에서는 사과농사를 많이 지으셨는데, 할아버지는 농사를 짓기보다는 한량이셨었나 봐. 모든 집안일과 농사일은 할머니 몫이었대. 가을에 사과를 팔아야 할 때에는 사과를 사려는 사람과 함께 몇 상자나 사가는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어 종이에다 적으셨다지. 그러나 할머니는 글씨를 모르니 적지를 못했고 아무도 모르게 적는 척만 했다는 거야. 그리고 팔린 사과상자를 몽땅 암기하여 돈을 받으셨다고 . 할머니의 암기력은 대단하셨던 거지.


할머니는 키도 크셨고 풍채도 좋으셨어. 성함도 큰 대자에 계집 여자를 써서 김, 대자, 여자, 였지. 진짜 이름 그대로 큰 여자 할머니였어. 할머니는 평생 머리를 자른 적이 없으셨지. 매일 아침마다 긴 머리를 참빗으로 빗고 땋아서 쪽을 짓고 비녀를 꽂으셨지. 평상시는 쇠로 된 비녀를 꽂으셨는데 특별한 날엔 금비녀를 꽂으셨어. 그 금비녀엔 쇠비녀에게 없는 긴 실이 달려있었지. 금비녀 앞쪽에 조그마한 실 구멍이 있었고, 굵은 검정실이 길게 묶여있었어. 그러면 할머니는 비녀를 꽂고 이 실을 다시 머리에 꽁꽁 묶어 놓으셨어. 아무도 못 빼가게. 자식들에게 칠순잔치 때 받은 할머니 보물 1호였지. 그때만 해도 칠순잔치는 대단한 거였나 봐. 장수의 상징이었지. 그 골목에선 우리 할머니만큼 산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지금의 내 나이인데 말이야.


우리 동네 골목에서 반장 할머니가 제일 무서웠다면 우리 할머니는 제일 인자하신 분이셨어. 할머니는 동네 골목의 어느 누구 개구쟁이라 해도 욕을 하거나 때리는 법이 결코 없었지. 그래서 골목 친구들은 반장 할머니한테는 인사를 안 했지만 우리 할머니에게는 인사를 아주 잘했어.


할머니께서는 "하늘이 점지하여 내려 주신 아이들을 내 맘대로 때리거나 욕을 하면 안 되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아주 말썽을 많이 피는 개구쟁이에게도 "지금은 그래도 헴 들면 다 나아지지." 하셨어. 헴 든다는 것은 이북 사투리로 철이 들면 이라는 뜻이었던 거야.


내가 놀러 나가려 하면 엄마는 꼭 셋째나, 넷째 동생을 딸려 보냈어. 그러면 사실 나는 놀 수가 없는 거야. 지금 생각하니 엄마는 막내 젖먹이며 연탄불에 밥하시며 펌프 물에 빨래하시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이 드는데, 그때 나는 노는 게 좋아서 놀 궁리만 할 때였거든. 동생을 데리고 나가면 동생 때문에 제대로 놀 수가 없었지. 그러면 할머니는 나 대신 동생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옛날 얘기를 해주셨어.


할머니는 고사떡을 나누어 줄 때에도 어떤 집은 "아이들이 많으니 떡 한 조각을 더 넣어라." 하셨고, 또 어떤 집은 "좀 어려우니 뒀다 먹게 한 조각 더 넣어라." 하셨지. 밥을 얻으러 오는 이들에게는 그냥 보내는 적이 없었어. 줄게 없을 땐 된장도 한 그릇 퍼주고, 김치도 한쪽을 주셨어.


반장 할머니는 사실 좀 나이 많은 아주머니였지 할머니는 아니었어. 그래도 우리 할머니처럼 쪽진 머리에 나무 비녀를 꽂고 다니셔서 우린 모두 반장 할머니라고 불렀지. 우리 골목의 반장 집이었거든. 딸 여섯에 막내를 아들로 난 나이 많은 아주머니였어. 반장 할머니 딸 중 여섯째는 나와 학년이 같았지만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았어. 나는 일곱 살에 학교를 들어갔고 그 아이는 8 살에 들어갔거든. 게다가 골목에서 아주 싸움을 잘했고 욕도 잘했어. 그 아이하고 안 싸운 아이는 한 명도 없었어. 그 아이 이름은 영순이었어.

한 번은 순이가 놀다가 다른 친구에게 욕을 해대는 것을 보고 할머니께서는 "아고, 이쁜 입에서는 이쁜 말이 나와야지, 어째 욕이 나오누. 너는 눈도 이쁘고 입도 이뻐서 이쁜 말만 하면 더 이뻐질 거야." 하셨어. 그 아이는 이 말을 자주 우리에게 했지. "너네 할머니가 나는 눈도 이쁘고, 입도 이쁘데, 그래서 이쁜 말만 하면 된데."라고. 나는 암만 봐도 그 아이가 이쁘지 않았는데 말이야.


무슨 일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영순이네 대문 앞에서 내가 그 아이하고 싸웠어. 그 아이는 대번에 내 머리채를 잡고 욕을 하고 때렸고, 머리채를 잡힌 나는 꼼짝 못 하고 있었지. 그 아이 엄마인 반장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나만 회초리로 때리시는 거야. 이 광경을 본 골목 아이들이 우리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일러서 할머니가 나오셨지. 그리고 나를 때리는 반장 할머니의 손에서 회초리를 뺏으며 소리를 치셨어. "그 손 그만 놓지 못하오? 왜 내 손주만 때리는 거요. 이아이가 맞을 일이 있으면 집에서 맞을 것이요. 둘 다 잘못했으면 함께 매를 맞을 일이지 어째서 남의 귀한 손녀딸만을 그렇게 때리는 거요. 어디 당신 딸내미 한번 때려 볼까?" 하시며 뺏은 회초리를 쳐들었지만 할머니는 때리지 않으셨어. 자기 아이 편만 드느라 나만 회초리로 때린 반장 할머니는 할 말이 없었나 봐. 게다가 우리 할머니가 영순이랑 마주칠 때마다 이쁘다, 이쁘다 한 걸 알게 된 거지. 내가 영순이와 싸우고 난 뒤, 반장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가 나타나면 아주 공손하게 인사하고 웃고 지나갔어. 그리고 반장 할머니가 남의 아이들을 때리는 버릇은 점점 없어졌지.


그 이후 아이들은 잘, 잘못을 가려야 할 땐 우리 할머니한테 와서 시비를 가렸지. 할머니는 누가 잘못을 했고, 누가 잘했다고 하지 않으셨는데도 아이들은 할머니의 판결을 모두 찬성했어. 할머니는 골목에서 나이가 제일 많으셨으면서도 제일 나이가 어린아이들의 친구셨어.


나도 그때의 내 할머니와 같은 나이가 되니 할머니를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 체격이 작아 할머니 이름처럼 "큰 여자"는 될 수 없지만 대신 마음이 큰 할머니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못 말리게 장난이 심한 앞집 개구쟁이가 하나 있어. 잠시도 몸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입도 가만히 두지 않는 11살 사내 녀석이야. 이 개구쟁이를 어쩌다 아파트 놀이터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요즘 정말 멋있어지는데? 자전거 타는 모습 최고야!" 하고 말을 건네면 이 말에 아이는 좋아서 겸연쩍게 웃어. 그리고 내 앞에서는 더 멋있어지려고 의젓한 척을 하지.


같은 층 옆집 아이는 밖에서 만나면 놀다가도 슬그머니 내쪽으로 와서 눈을 맞추고는 인사를 해. 그럼 나는 "인사의 왕이 나타났네. 음.. 이름이.." 하고 뜸을 들이면 금세 "지워요."하고 대답을 해. "그렇지. 지우! 알고 있었지. 오늘은 눈이 더 예쁜데." 하고 얘기해주면 이쁜 눈으로 씽끗 웃고 다시 친구에게 가서 놀지.


아무것도 아닌 내 한마디에 아이들이 들떠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곤 해.


할머니의 현명함이 고스란히 내게 머물기를 바라며

고래는 춤추게 하지 못하지만,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마음은 춤을 추게 해 주고 싶어. 이게 지금의 내 몫이라고 생각해.


결국 다정함과, 자상함과, 돌봐줌과, 겸손과 사랑과 지혜와 현명함은 학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람의 품성에서 나오는 거라는 것을 나는 할머니에게서 배웠지.


내가 할머니의 나이가 되고 나니 할머니가 더 그리워지네.


할머니!

내 아이들과 내 손주들도 언젠가는 나를 그리워하겠지요.

당신이 내게 해 주신 것처럼 나도 내 아이들에게 그리움을 주고 싶어요.


큰 여자, 할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