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겨울에는 교실에 난로를 폈어.지금처럼 보일러로 난방이 되는 게 아니라 일일이 사람 손으로 난로에 불을 지펴야 했지. 반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주번을 했어. 그 주의 주번은등교시간 보다 20분 내지 30분정도 일찍 등교해서, 준비된 장작도 가져오고 조개탄도 가져와서 불을 피우는 것이 첫 번째 일이었지. 그리고 나면 난로에선 매캐한 연기도 나고 주번은 연기에 매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 그런 주번 덕분에 겨울의 교실은 따뜻했고 친구들의 마음도 따뜻했지.
불 피우고 나면 난로 주위부터 교실은 따뜻해지고 셋째 시간부터는 주번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모아 난로 위에도 올리고 난로 옆에도 차곡차곡 쌓아 놓는 거야. 그리고 조금 있으면 밥이 구수하게 눌은 냄새도 나고 도시락에 함께 싸왔던 김치가 익어 맛있는 김치찌개 냄새도 났어. 그러면 주번이 수업 중간중간에 난로 맨 아래에 있는 도시락과 맨 위의 도시락을 서로 바꾸어 놓곤 했지.
넷 째시간 쯤 되면 각 교실에선 반찬 냄새로 교실은 무슨 식당 같았고, 복도에까지도 냄새가 진동을 했어. 그래도 문을 잘 열지 않았어. 밖은 너무 추웠거든.
난로 가까이 앉은 아이들은 뺨이 익어 빨갛게 되어 뜨겁다 난리고, 저 맨 뒤 창가에 앉은 아이들은발 시려 춥다고 난리면, 수업 시간이라도 선생님은 자리를 바꾸어 주는 아량을 베풀어 주기도 하셨지.
점심시간이 되면 모두 양철로 된 도시락이 뜨거워져밥이 눌어 눌은밥도 먹고, 이 친구 저 친구끼리 반찬을 서로 나누어 도시락을 뚜껑 닫은 채로 흔들어서 비빔밥으로 먹기도 했지. 그래도 도시락은 점심시간에 먹었어.1964년부터 1966년 중학교 시절의 겨울 점심시간풍경이야.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첫 째시간이나 둘 째시간이 끝나면 한 명씩 두 명씩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지. 그리고 셋째 시간이면 거의 다 도시락을 먹어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는 친구는 거의 없었어. 점심시간엔 매점에 가서 팥이 들은 동그란 도넛츠나 꽈배기를 사 먹고 놀았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 그날따라둘째 시간 끝나고 도시락을 먹은 아이들이 많았고 창문도 열어 놓지 않았던가 봐.
수업하러 오신 선생님께선 반찬 냄새가 난다고 창문을 열라고 하셨어. 그리고 누가 도시락을 까먹었느냐고 물었지만 도시락을 먹은 우리들은 그냥 가만있었지.반찬 냄새는 나는데 도시락 먹은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거야.
선생님께선 우리들에게 도시락을 다 꺼내 뚜껑을 열라고 하셨고 도시락이 텅 빈 아이들 숫자를 세셨어. 도시락 먹은 우리들은 꼼짝없이 그시간 수업이 끝난 후 모두 빈 도시락을 들고 교무실 앞 복도에 무릎을 꿇고 벌을 설 수밖에 없었지.
연필화, 양철도시락 by 빈창숙
수업을 끝낸 선생님들은교무실에 들어오시려다우리를 보고는 "으이구! 잘 걸렸네." "아침 안 먹고 왔냐?"또는 "배 고팠냐?" 하시며 출석부로 머리를 치셨고, "지금이 점심시간이냐?" 하시면서 놀리기도 했지. 교무실에 볼 일 있는 동급생이나 상급생들, 그리고 아래 학년 아이들은 키득키득 거리며 지나가고 쉬는 시간 내내 그렇게 벌을 섰지.
한 반에 오십 명인 아이들 중 열 명 정도가 모두 나와 복도에 무릎 꿇고 뚜껑 열린 도시락을 들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을 거야. 그런데 문제는 한번 터진 웃음이 멈추질 않는 거지. 지나가는 선생님들이 머리를 출석부로 때리고 가도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친구들이 놀리며 지나가도 웃음이 터지고, 급기야 선생님이 "너희들은 벌을 서는 거냐? 놀러 왔냐, " 한소리 더 얹으셨지. 근데 그 말을 듣고 더 웃음이 터져서 숨도 쉴 수 없었어.
무릎을 꿇고 있던 친구가 꾀가 나서 "선생님, 화장실 가고 싶어요! 쌀 것 같아요!" 하고 외쳐댔지. 그러면 너도 나도 "저도요!" 외쳤고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그냥 싸! 괜찮아!" 하시며 끄덕도 안 하셨지. 그때 아무도 오줌 싸지 않은걸 보면 진짜 오줌이 마려웠던 친구들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
다음 수업시간 선생님은 우리에게 오시더니 "너희는 수업 안 들어와도 된다." 하셨고 우리는 "공부하고 싶어요. 선생니 임~" 하고 외쳐댔지. 그러나 선생님은 웃으며 그냥 지나가셨어. 수업 종이 쳐서 조용해진 복도에 다 같이 앉아 키득거리는 건 얼마나 재밌던지. 선생님이 반장을 보내 이제 교실로 들어오라고 해도 "아니야. 우린 제대로 뉘우쳐야 해. 선생님께 더 뉘우치겠다고 전해드려." 하며 침울한 척을 했었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잠시 후 우리들은 도시락 들고 교실로 들어가는데 교실에 남아있던 친구들이 박수를 치는 거야. 다 같이 벌 받고 온 게 확실한데 무슨 훈장을 받고 온 마냥,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교실로 들어갔지.적반하장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