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는 1967년부터 1969년도였지.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분들도 있겠지.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인가 세어보는 분들도 있을 거야.53년 전이네.
그때는학교에 갈 때 교복과 뱃지를 꼭 달고 다녔지. 또한 거의 모든 학교 여학생들의 머리는 짧은 단발머리였어.그리고 남학생들은 까까머리였지. 그러나 예외도 있었어. 우리 학교는 곱슬 머리인 친구에게는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다니게 했지. 그때 곱슬 머리는 선망의 대상이었어.
학교 뱃지나 명찰을 안 달고 교문에 들어오는 학생은 항상 등교시간에 학생주임 선생님과 학생과 선배들의 매의 눈에 들켜 이름을 적어야 했어.그 교문을 통과할 때는 언제나 가슴이 콩닥콩닥했지.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교문을 지나갈 때는 옆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도 입을 꾹 다물곤 했지.
학생의 머리가 귀 밑 1cm를 넘긴 경우 독한 학생주임 선생님은 갖고 있던 가위로 단발머리의 한쪽만 자르기도 했어. 간혹 자르려는 선생님과 자르지 못하게 하려는 학생의 버둥거림으로 결국은 한쪽 머리를 확 자르기도 하셨지. 잘못 잘린 머리는 좌우 대칭이 맞을 리 없었고, 학생들의 원성을 샀지만 머리를 자르는 일들은 사라지지 않았어. 나는 이런 일들을 당하지 않으려 머리가 좀 긴 것 같으면 등교시간을 앞당겼어. 학생주임 선생님과 학생과 선배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잔머리를 썼지. 일단 등교 시간만 피하면 됐으니까.
내가 고등학교 졸업 전날도 선생님은 내일 졸업 할 학생인걸 알면서도 머리가 길다고, 규칙을 어겼다고 같은반 친구를 한쪽에 세우셨지. 그 친구는 내일 졸업이니 봐달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규칙이라고 가위를 드셨어. 화가 난 그 친구가 너무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선생님이 한쪽 옆만 자르려는 머리가 뒷머리를 확 자르게 되었지. 그 친구는 울고불고했고, 고등학교 3학년 전체가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어쩌겠어. 잘린 머리를 붙일 수도 없고. 친구는 졸업식날 그 머리 그대로 졸업식에 참여하였어. 졸업식에 참여한 학부모들과 후배 학생들 사이에선 "너무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라는 원성이 나왔지만, 후배 학생들은 항의는커녕 놀라움으로 조심만 할 뿐이었지.그리고졸업식 전날 한쪽 머리를 잘린 친구는 두고두고 그 선생님을 욕했지.
과연 졸업 전날 머리가 길다고 학생의 뒷머리를 아주 짧게 자른 선생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무엇을 학생에게 주고 싶었고, 무엇을 얻었을까?
지금도 그 행동에 정당성을 말하고 싶으실까?
그 학생의 입장을 한 번쯤 생각해 보셨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땐 머리를 갖고 학생들의 단정함이나 모범을 얘기했나 하는 생각이 드네. 그리고 요즘 여학생들 뿐만 아니라 남학생들의 머리도 자유스럽게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우습기만 해.
그땐 남학생들도 까까머리라 부르는 머리로 1cm 정도의 길이였지.이따금 길에서나 버스에서 남학생들이 모자를 벗으면 머리 한쪽을 바리깡으로 민 모습들을 자주 보곤 했지. 그 남학생도 머리가 길다고 학교에서 걸려 바리깡으로 밀게 된 거였어. 요즘은 일본말이라 잘 안 쓰는 것 같은데 그때는 다 바리깡이라 불렀어. 그러면 한쪽 귀 탱이를 밀어 땜빵처럼 된 머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학교에 다니는 담력을 가진 남학생들도 많았어. 우리들은그 모습을 보면 대놓고는 웃을 수가 없고 고개 숙이며 낄낄거렸지.
고등학교 때 우리들은 체육시간에는 체육복으로 갈아입어야 했어. 지금처럼 보조가방이 없던 시절이라 우리들은 다들 색색깔 보자기에 체육복을 싸서 들고 다녔지.가방에는 교과서랑 공책, 필통을 들고 다녀야 해서 가방에 체육복까지 넣을 자리가 없었어.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체육시간이 있던 날, 나는 갈아입을 체육복을 깜박 잊고 안 가져온 거야. 체육복을 안 가져오면 보통 때는 옆반 친구에게 가서 빌리면 되었는데 그날따라 체육시간에 체육이 하기 싫어서 빌리지 않았어. 그리고는 내 짝꿍에게 체육복을 싸온 보자기를 빌리고 잽싸게 깔고 있던 나의 방석을 보자기 안에 넣고 묶었지. 나 혼자만 체육복을 안 가져왔나 했더니, 교실 뒤에 있던 친구 하나도 체육복을 안 가져왔나 봐. 한참을 망설이더니 그 친구도 짝꿍이 벗어 놓은 교복을 보자기에 싸고 있었어. 그리고 그 친구와 나는 아픈 척하며 조금 늦게 운동장으로 나갔지.
"선생님,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요."
그러면서 주먹을 쥔 상태에서 왼손과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펴고 엄지 손가락을 ㅅ처럼 맞대고 알파벳 대문자 M을 만들어 보였지. 그 손짓은 무언의표시로서 맨스, 월경 중이라는 말이었어. 체육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라 학생들이 월경 중이라 하면 별말씀 없이 쉴 수 있게 해 주셨거든. 그때만 해도 여학생들 아기 기저귀 천으로집에서 생리대를 만들어 사용했어. 방수처리를 할 수 없었던 생리대는 지금처럼 행동이 자유스럽지 않았지. 생리 중엔 늘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치마나 바지에 새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들을 갖고 있었어.
선생님께선 옆에 있던 친구에게 손가락으로 알파벳 M자를 만들어 보이며 "너도 이거냐?" 하셨지. 그 친구는 갑자기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어. "아, 아니요. 네. 맞아요."라고.
"인마, 아니면 아니고, 맞으면 맞는 거지, 아니요, 맞아요. 는 뭐야." 하셨어.그러시면서 선생님께서는 "체육복은 가져왔나?"하고 물으셔서 나와그 친구는 옆에 끼고 있던 보자기를 내밀었지. 선생님께선 체육수업을 못하게 된 건 괜찮아하셨으나 체육복은 꼭 챙겨 오게 하셨거든.
"그래? 그럼 체육복 갈아입고 와서 저 그늘 밑에 앉아 있어." 하시는 거였어. 우린 황당했지. 내 보자기 속엔 방석이 친구 보자기 속엔 짝꿍 교복이 들어 있었으니까. 근데 그때 내가 봐도 보자기가 너무 네모 반듯한 거야. 난 아차 했지. 선생님은 재차 얼른 갈아입고 오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서있기만 했어. 선생님은 수업 중간 중간에 우리 둘에게오셔서 "어서 체육복 갈아입고 와. 안 그러면 결석 처리할 거야."하고 말씀하셨어. 체육복을 갈아입고 오면 수업을 한 것으로 해주고 안 갈아입고 오면 결석처리를 한다고 하셨지. 하지만 난 방석을 입을 수 없었고, 그 친구는 갈아입어도 교복이라 가만히 서있는 수밖에 없었어.
체육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우리 둘을 교무실로 부르셨어. 그리고는 "보자기 풀러 봐. 체육복이라며."라고 말씀하셨어. 내가 꾸물거리자 선생님은 나 대신 내 보자기를 직접 풀으시며 교무실에 계시는 선생님들 한테 말씀하셨어. "자, 새로운 체육복을 구경시켜드릴게요. 바로 이겁니다." 하시며 방석을 높이 쳐들었고 교무실은 웃음바다가 되어버렸지. 그리곤 옆에 계시던 선생님은 짓궂게 내게 다가와 " 와! 체육복이 방석이라. 방석 입어봐." 하시며 머리에 꿀밤을 주셨고, 지나가는 선생님마다. 한 대씩 툭툭 치셨어. "인마, 속이려면 제대로 속여야지." "입어봐!" "어이구! 이것들을 그냥!" 이렇게 수난을 당했고, 같이 갔던 친구도 보자기를 풀러 교복이 나오자 " 언제부터 교복이 체육복이 됐냐?"이건 또 누구 거 싸왔냐?" 선생님들은 돌아가면서 면박을 주셨지.
퀼트방석 by 빈창숙
쉬는 시간 내내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께 한 마디씩 다 듣고 다음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서야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어. 교실에 들어가니 친구의 짝꿍은 벗어놓은 교복이 없어졌다고 난리가 났고, 교실 전체를 뒤져 찾느라고 야단법석이었지.친구가짝꿍에게 말도 안 하고 살짝 가져왔으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그 이후로 체육선생님은 나를 방석이라 부르셨어.
"어이, 방석!"
그러면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도 안 하고 종종걸음으로 지나쳤지.가끔 친구들도 나를 "방석! 방석 좀 빌려주라." 하며 놀려댔지뭐야.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서도 체육선생님께선 나를 "방석!" 하며 불렀어. 한 번의 실수로 멀쩡한 이름 대신'방석'이 되어버린 내 처지가 우스꽝스러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