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놀던 골목은 학교가 끝나고 나면 늘 아이들로 붐볐지. 골목 안의 아이들은 학교 갔다 와서는 몽땅 가방 던져 놓고 골목으로 나와 놀았던 거야. 그때는 학원 다니는아이들은 하나도 없었어. 아예 학원이란 것이 없었으니까. 학교 갔다 오면 골목으로 나와 노는 게 전부였지. 골목엔 12~13집 정도가 있었는데, 한 집에 6~7명씩 되는 아이들이 전부 나와 놀면 골목은 꽉 차서 마치 약장수가 온 것처럼 들썩거렸어.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니 1960년도네.
골목이 꽉 차면 사내 녀석들은 골목으로 들어오기 전에 있는 연탄공장 옆에 공터로도 가서 놀기도 했지.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들이 많은 데서 북적거리며 노는 게 더 좋았어. 저녁 할 시간이 되어 엄마들이 포대기와 동생들을 하나, 둘씩 데려오면 여자아이들은 동생을 업어 주면서도 놀았지.나도 둘째와 셋째 동생을 그때 많이업어주었어. 혹시 지금 허리가 뻐근한 건 그때 동생들을 줄줄이 업어 주어서 그런 건 아닐까?언니가 아기를 업으면 조금 있다가 아기가 언니의 엉덩이 밑으로 줄줄 내려오는데, 나는 아기가 등에 탁 붙어서 흘러내리지가 않았지. 그래서 엄마는 동생들을 내 등에 업혀주곤 "어이구. 잘 업네. 아기가 등에 껌처럼 붙어있네." 하셨어. 나는 이소리에 동생들을 잘도 업어주었지.
딱 1장 남아있는 둘째 동생 업고 있는 사진
골목에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골목은 마치 연주하기 전 악기들을 조율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삐거덕거렸어. 편을 가르느라, 또 무엇을 할지 서로 얘기하느라고언성을 높이기도 했지. 그리고는 남자끼리, 여자끼리, 또래끼리, 놀 것을 찾아 뭉쳤지. 땅따먹기 하는 아이들, 남자아이들끼리 주로 하던 자치기 하는 아이들, 말뚝 박기하는 아이들, 구슬치기 하는 아이들, 딱지치기하는 아이들, 사방치기 하는 아이들이 골목에서 자리 잡고 놀았어. 그리고 나면 골목은 각자의 목소리로 잘 조율된 악기처럼 서로 불협화음 없이 아이들의 음성이 노래처럼 골목을 꽉 메웠지. 하고 있던 놀이가 싫증이 나면 슬쩍 옆으로 가서 하고 싶은 놀이에 끼어들면 되었지,
난 안 좋아하는 놀이가 없었어. '많은 공기알 놀이'는 나의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놀이였지. '많은 공기놀이'는 '다섯 알 공기놀이'와는 놀이 방법이 달랐지.
'다섯 알 공기놀이'는 작은 돌멩이 다섯 알을 바닥에 놓고 그중의 한 알을 잡고 위로 던지면서, 바닥에 있는 공기알을 손끝으로 한 알씩 잡어 와야 하는 놀이야. 한 번에 한 알씩 네 알을 다 잡아오면 위로 던져 다섯 알 모두 손등에 올려놓고, 그 공기를 다시 위로 또 던지며 다시 손으로 잡아야 하는 놀이였지. 우리는 이것을 '꺾기'라고 불렀어. 손에 잡은 갯수대로, 1년~2년 이렇게 수를 세었지. 이렇게 더한 점수가 많을수록 이기는 놀이였어.
그러나 '많은 공기알 놀이'는 한 손으로 그냥 공기 한 알을 잡고 위로 던지는 동시에 땅에 있는 공기알을 여러 개 잡을 만큼 잡아서 좀 전에 위로 올라갔던 공기알까지 잡아야 하는 놀이였어. 공기알이 손에서 빠져나가도 안되고 위로 올렸던 공기알을 놓쳐서도 안 되는 놀이였어. 또 공기를 잡을 때 내가 손끝으로라도 건드린 공기는 잡아서 와야 해. 건드리기만 하고 내 손에 못 넣으면 지는 거지. 그리고 내가 잡아 온 공기를 내 앞으로 다 가져다 놓는 거야. 나중에 놀이가 다 끝나면 서로 상대편의 공기를 세는 거였지.
우리들은 골목 맨 끝집 친구네 집 대문 옆에 쑥 들어간 공간에 구멍 난 세숫대야를 갖다 놓고 작은 돌멩이 공기들을 넣어 두었지. 그리고 '많은 공기놀이'를 할 때에 그것을 몽땅 땅에 꺼내 놓으면 되는 거였어. 그 공기알은 누구든지 갖고 놀면 되는 골목의 공동 놀잇감이었지. 땅 위에 작은 돌멩이 공기알을 다 쏟아 슬슬 편편하게 펴 놓고 난 후 "덴찌"로 편을 가르는 거야. 그땐 '덴찌'가 일본말인 줄도 몰랐지. "데엔 찌"라고 커다랗게 소리를 내면서 손바닥을 위로하거나 손등을 보이게 하여 같은 쪽을 낸 아이들끼리 편을 먹는 거였어.
난 어찌나 손 끝이 야물었는지 사알짝 살짝 옆에 붙어있는 공기알을 잘도 피해 가면서 놀았지.공기알 놀이는 손끝으로 공기알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내 손톱 밑은 항상 까만 흙이 끼어 있었고, 내 손톱은 손톱의 끝 가운데가 쏘옥 들어가 있었어. 날마다 땅을 긁으며 많은 공기알 놀이를 했기 때문이지.
3학년 때로 기억해. 그날은 학교 갔다 와서 계속 많은 공기알 놀이만 했어. 이쪽저쪽 쉬운 쪽의 공기알 무리들을 찾느라 양 무릎을 꿇기도 하고, 땅에 철버덕 앉아나와 공기알의 각도도 재고, 그러다 보니 두 손은 흙으로 덮여 있었지. 어찌나 신나는지 손이 흙으로 덮어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저녁때가 다 되어 둘씩 편을 먹은 우리는 공기알 놀이를 그만하려고 상대방의 공기알이 몇 개인가 세어보고 있었지, 근데 상대편 친구 하나가 따먹지도 않은 공기알을 가져다가 슬쩍 자기편공기알에 놓아 싸움이 벌여졌던 거야. 얼핏 봐서는 공기알이 어느 편이 더 많은지 가늠이 안되었거든.
나는 "왜 따먹지도 않은 공기를 훔쳐가는 거야."하고 말했더니
"뭐가 훔친 거야? 안 훔쳤어."라고 상대편 친구가 말을 했어.
"훔쳐서 여기다놓는 거 다 봤어. 다섯 갠가 여섯 개?"
씩씩거리던 친구는 가만있다가 "아냐, 다섯 개 아냐! 세 개야."라고 얘기했지
"거봐, 가져갔네. 내가 가져가는 거 다 봤어. 다섯 개 정도였어."
"아냐, 아냐, 세 개야"
"너는 거짓말쟁이고 도둑이야."
"나는 도둑 아니야."
이렇게 시작된 싸움은 드디어 공기알을 슬쩍 가져간 친구가 따 먹은 공기알들을 확 던져버리면서 크게 번졌지. 급기야는 서로 밀치다 머리끄덩이까지 잡고 싸웠어. 집에도 안 가고 말이야.왜 그땐 싸우면 머리끄덩이를 잡았을까?
어찌나 크게 싸웠는지 골목에 있던 아이들이 양쪽 집에 가서 싸운다고 일렀고, 결국 양쪽 엄마들이 나오셔서 싸움은 끝났지. 엄마는 공기알을 다 버려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고, 실제로 엄마는 공기알을 흩어버리셨지. "이놈의 공기알 다 갖다 버리지 못해?"라며.
씩씩거리며 집에 오니 할머니께선 동생들을 모아놓고 손톱을 깎아 주고 계셨어. 할머니의 재봉 가위는 엿장수의 가위만큼이나 컸고 무거웠으며 내가 가위를 잡으면 가위가 벌어져 종이도 잘 안 잘리는 가위였어. 그러나 엄마와 할머니는 아주 커다란 재봉 가위로 동생들의 손톱을 아주 잘 깎아 주셨지.
할머니는 첫째 동생, 둘째동생, 셋째 동생까지 그 큰 가위를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시며 손톱을 동그란 모양으로 자르고계셨어. 할머니의 입은 가위 따라 실룩실룩 움직이고 계셨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할머니 따라 내 입도 실룩실룩 움직이고 있었지.할머니는 옆에 있는 나를 보시며 "손톱 깎아주랴. 어디 보자." 하시며 내 손톱을 보시더니 "깎을 게 없네." 그리곤 웃으셨어.
내 손톱은 깎을 게 없었어. 양 옆 손톱이 조금 삐죽 나오면 이빨로 물어뜯어 버리면 됐거든. "할미도 어렸을 때 노느라고 또 밭 매느라고 손톱을 깎은 적이 없었단다. 네 손톱이 꼭 할미를 닮았구나." 할머니는 소리 없이 빙그레 웃으셨고 나는 "할머니도 놀은 적이 있었어?"라고 물었지. 내가 본 할머니는 놀은 적이 없으셨거든. "그럼, 많이 놀았지."라는 대답에 나는 할머니가 할머니로 태어난 줄 알았는데 할머니도 어렸을 적이 있었다는 말에 놀랐지. "근데, 오늘 싸웠냐?"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으셨어. 나는 억울해서 "응" 하고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지. 그리고는 끝에 "걔네들은 도둑이야."라고 했더니, "그깐게 도둑이면 어찌 사누?" 하셨어.
다음날 아침 학교 가기 전 엄마가 흩어버린 공기알을 주으려 갔더니, 공기알은 우리가 항상 놓아두던 장소에 그대로 놓여 있는 거야. 나는 밤새 꿈에서 조차 공기알을 주으려 다녔는데 널브러진 공기알은 없었어. 누굴까 생각했지만 한 사람만 생각났어. 늘 뒷짐 지고 다니시는 친구 할아버지였을 거라 생각이 들었지. 그 할아버지께서는 아침마다 골목을 싸리빗자루로 쓸으셨거든. 그러면서 흘리고 간 딱지나 구슬, 자치기 막대기 등을 반장 할머니네 대문 앞에 갖다 놓으시곤 했지.
나는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어.
그리고는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공기알 놀이를 했지.
공기알 실력이 비슷했던 친구와, 싸움의 실력도 비슷했던 친구와 언제 싸웠냐는 듯이 또 놀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