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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01. 2023

보라색 제비꽃

엄마

공원묘지에 있는 엄마를 만나러 갔다. 


나이를 먹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사람이 변해간다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게 마음에 걸리던 엄마 비석의 뒷면에 덩그러니 적혀있는 우리 삼매의 이름이, 이제 넉넉한 마음으로 보아진다. 그렇게 셋을 떨구셨으니 셋의 이름만 남아 있는 것도 괜찮다.


묘 곳곳에 있는 조화를 보는 것도 그렇다. 그 남사스러운 화사함이 싫었는데 차에서 내려 엄마를 바라보니 그 자리가 초라해 보인다. 주위의 자리에는 노랑으로, 핫핑크로, 떠난 그들을 자손들이 기억하고 있음을 화려하게 알리고 있었다. 이미 져버린 꽃이 되어 땅속에 묻혀 있는 그들에게, 시들지 않는 꽃처럼 잘 어울리는 것은 없을 것이다. 공원묘지에서 조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다니.


지난 명절에 남편에게 엄마 비석 옆에 세워 둘 화병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비석에 엄마의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이름까지 넣을 것을 고민하다 포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어디에서 사야 할지 모르겠다고 *팡에다 알아봐야겠다고 하자 자신이 사겠다며 괜히 엉뚱한 것 사지 말라고 했다. 그 뒤 몇 번 종용하기는 했지만 알아보고 있다고만 하는 대답만 듣고 또 명절을 맞이한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엄마의 무덤 앞에서 하소연을 한 적이 없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하소연하면 무엇하나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라고 찾아가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하소연이라니.


엄마 앞에 가자마자 "엄마! 애 아빠가 화병을 사준 대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아마도 죄송해서였을 거였다. 종용하기는 했어도 깜빡 잊고 살고 있었다. 조화는 없었대도 엄마의 무덤은 보랏빛 제비꽃이 피어 있었다. 조용히 피어있는 꽃을 잠시 바라보다가 뽑았다. 제비꽃이 참 많이도 자리 잡고 있었다. 딸과 함께 제비꽃을 뽑자니 정채봉의 <어머니의 휴가>라는 시가 떠올랐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만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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