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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28. 2023

인생은 마라톤

혼자인가, 함께인가

몇 년 전 남동생네가 명절을 새러 왔는데 남동생이 몹시 말라있었다. 깜짝 놀란 내가


어이구, 내 동생. 왜 이렇게 말랐어! 얼굴이 늙어 보여.


하고 놀라자 올케가 동생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언니한테 그런 소리 들을 줄 알았어.


동생은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했다. 배가 나와서라고는 했지만, 자기 자신을 다잡기 위해 뛰기 시작한 것 같았다. 마라톤을 시작하고 군살도 빠지고 몸이 탄탄해 보인다. 무릎이 많이 아프다고는 하는데 벌써 완주를 열 번은 한 것 같다. 첨에는 혼자 뛰더니 이제는 마라톤 클럽에 들어가서 함께 뛴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안 84가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는 것을 보았다. 생각해 보면 서너 시간 걷는 것도 힘든데 42.195Km를 뛴다는 것이 당연히 만만치 않을 텐데, 그저 남동생이 나간 마라톤 대회에 기안 84가 뛰었다고 해서 혹시라도 화면에 내 동생이 뛰는 모습이 나올까 싶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기안 84가 뛰는 것을 보는데 눈물이 나왔다.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자신의 체력의 한계는 20Km인데 그런데도 완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덤볐다는데 역시나 만만치 않았던 거다. 옆구리가 결리고 다리가 휘청거리고 중심이 무너지고 나중에는 발목이 아파서 못 뛰겠다고 결국은 길바닥에 누워버렸다. 


마라톤은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옆에서 누가 대신 뛰어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힘들고 괴로워도 자기가 뛰기로 한 그 길을 끝내 혼자서 마무리해야 하는, 인생 같은 일이 마라톤인 것 같다. 힘들어서 누워버린 기안 84를 사람들이 도와 일으켜 세웠다. 옆에 뛰던 사람들이 이름을 불러주며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물을 건네주고 옆에서 보조를 맞춰 뛰어 주었다. 마라톤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뛰는 종목이었다. 기안은 그들의 파이팅을 밑거름으로 끝내 5시간 안에 완주를 해냈다. 




나 사는 게 바빠서 동생들에게 많은 것을 신경 써 주지 못했다. 각자 결혼을 시키고 나서는 내 할 일이 다 끝난 것 같아서 이제는 알아서 잘 살아라, 했다. 동생들은 제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며 훌륭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쉽기만 했겠는가. 남들은 든든한 부모님이 방패막이가 되어주는데 기껏 누나와 언니뿐인 동생들은 인생을 살아내기가 퍽퍽했을 것이다. 정말 가진 거라고는 자신의 몸뚱이 하나뿐인 아이들이 세상 앞에 당당하게 살아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각자 알아서 꾸역꾸역 자신의 몸집을 키우며 힘들면 조금 걷고 힘나면 다시 뛰며 살고 있다.


길고 긴 마라톤을 하다 보면 힘들 때도 있지만 그 힘듦을 견디고 나면 다시 뛸만한 순간이 온다고 한다. 세상사 어려운 일만 있겠는가. 힘들다 보면 또 살만하고, 그러다 또 힘든 일이 생기고... 그렇게 뛰다 걷다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일 것이다. 포기만 안 한다면 완주를 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 나도 한 번 도전해볼까 하다가 아침해를 보자마자 포기했다. 나는 그냥 걷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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