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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도착하는 시간

힘내라 대한민국

by 배추흰나비

떠날 때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의 여행기록을 꼼꼼하게 남기고 싶었는데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계엄에 비행기 사고에....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외국에서 보는 대한민국에 대해 쓰고 싶지 않았고, 그럼에도 행복했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2024년의 끝에 선 유럽은 2025년 대희년을 맞이하느라 묵을 때를 씻느라 바빠 보였다. 트레비 분수에 물이 빠진 모습과 물이 찬 모습, 판테옹을 바라보며 마시던 찐한 커피 한 잔, 골목을 끼고돌자 나타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경이로움, 그리고 아우슈비츠의 모델이 되었다는 다하우 강제 수용소의 을씨년스러움을 기록하고 나누지 못하고 그저 눈에 담아 두기만 하고 아직도 정치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한국으로 돌아왔다.


융통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나는 유럽 여행을 다녀온 다음다음날 출근을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부터 출근날을 잡길래 그래도 8시간의 시차는 적응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루 미룬 거였다. 생각해 보면 일주일을 미루던가 아예 1월까지 쉬었어도 큰 문제가 없었을 텐데 혹시라도 회사에 불편함이 있을까 봐 여행을 다녀온 죄인은 그렇게 바로 출근을 했다. 병동에 환자가 많이 줄었었다는데 내가 도착하자마자 또 점점 늘기 시작하여 더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내가 언제 독일에, 이탈리아에, 아-오스트리아에 있었던가.


몸은 한국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는데 -'정신없이'라는 말이 딱 맞다- 영혼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늘에 붕 떠 있는 느낌이랄까.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명절이나 공휴일에도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다. 사실, 독일에 가기 전 한 달 반의 알바정도로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출근을 하고 있고, 계약서에 서명을 하며 정직원이 되었다. 나는 또 그렇게 대한민국에 적응하고 있었고, 벌써 3월도 중순이 지나고 있으며,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아직 탄핵은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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