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업
면접 때 영양사님이 왜 이일을 하려고 하느냐 물었을 때
이제 머리 쓰는 거 그만하고 몸 쓰는 거 하려고요.
라고 대답했다. 몸을 쓰는 일을 얕잡아 본 것이 아니라 머리 쓰는 일에 지쳐 있었다는 것이 맞을 거다. 또 작년 샤인머스캣 농장에 알바를 다니면서 몸을 쓰는 일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었고, 나는 나의 체력과 정신력을 믿었다. 그리고 제법 일을 잘한다고 칭찬받으며 재미있게 일하고 있었다.
2월이 되었을 때 진흥원에서 이력서를 다시 내고 면접을 봐야 올해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작년에 진흥원에서 소개한 일을 해서 번 돈은 연봉 70만 원이었다. 200명 가까이 되는 강사진 중에 글쓰기 강사는 나 하나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글을 쓴다든가 책을 읽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즈음의 마음이 되었더랬다. 이름을 올려놓는다고 해서 수업이 들어올까 싶었어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다리나 걸쳐나 보자 싶어서 영양사에게 일주일 중 내가 쉬고 싶은 요일에 계속 쉴 수 있는지 상의를 했다. 한 달에 열흘을 쉴 수 있고, 주말 휴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언니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혹시 생길 수 있는 수업을 위해 미리미리 양해를 구해놓고 다시 최여사가 되어 열심히 일했다.
문화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출간을 목표로 하는 책 쓰기 수업이 오픈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세상에는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그것이 출간과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싶어서 순진하고 야심 차게 문화센터에 제안을 했으나 일 년 동안 수강생이 모아지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던 수업이었다. 화요일에 수업이 오픈이 되었고, 나는 화요일에 휴무를 하게 되었다. 딱 12주였다. 그러던 차에 진흥원의 소개로 지역아동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다른 요일을 또 쉴 수가 없어서 화요일 오후 4시가 아니면 수업이 불가하다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지역아동센터는 13주 수업을 원했다. 그래서 나는 화요일에는 2번의 수업을, 다른 날에는 영양실 근무를 하게 되었다.
이제 머리 쓰는 거 그만하고 몸 쓰는 거 하려고요.
라는 말이 무색하게 머리 쓰는 일은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늘 하던 짓이지만 상대에서 요구하는 수업에 맞게 매번 새로운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연구하고 활동지나 PPT를 만드는 모든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수업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