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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

견디는 것이 이기는 것이여

by 배추흰나비

영양실 근무 반년 정도가 되니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더러워진 거울이라든가 끈적해진 식탁 모서리, 커피 알갱이가 튄 정수기 등등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깨끗하게 닦았고, 언니들이 내 이름을 부르기 전에 할 일은 미리미리 다 처리를 했다. 전처럼 일을 시키면 바로 "네!" 하지 않았다. 반장 언니가 전처리를 하던 테이블을 빨리 닦으라고 소리치면 "지금 미역을 빨고 있잖아요? 안 그래도 미역 빨고, 싱크볼 닦은 다음에 테이블 치우려고 하고 있었어요. 지금 바로 그거 해야 하는 거 아니죠?"라고 말했다. 반장언니의 일 지시 랩은 생각나는 대로 바로바로 뱉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 막 시키는 걸 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언니들은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직접적인 지시가 없는 한 내가 우선순위를 정해서 일하기 시작했다.


성질이 나면 우당탕탕 그릇을 막 던지면서 일하는 반장언니에게 "스뎅이라 다행이지 다 깨지겠어요~."라고 말했다. 내 이름 닳게 불러대면 "상희 씨 없으면 어쩔라고 그랴. 왜 불러요 왜". 하고 대꾸했다. 반장언니는 내가 영양사랑 조금 친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날이면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어깨로 툭툭, 팍팍 치고 지나갔는데 그때도 "말로 하세요. 비키라면 비킬 것이고, 뭘 달라고 하시면 줄 것인데 왜 이렇게 치고 다니셔요. 내가 살을 더 빼야 거었네."라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내 말투가 바뀌자 반장언니의 고함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이렇게 싹수없이 말하니 윽박을 지르거나 함부로 대하던 것이 수그러든다는 것이 참, 슬펐다.


7년 차 S언니는 나와 같은 세팅부로 직속 선배다. 내가 일을 찾아서 하게 되면서 S언니는 나를 더 미워했다. 알아서 일하면 칭찬받을 줄 알았던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음식물에서 튄 찌꺼기나 더운 음식에서 나온 김이 오래 서려서 벽을 장식한 거울은 완벽하게 깨끗하지 못하니 대충 닦으라고 했으나 어느 식수 적은 날, 작정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정말 반짝반짝하고 깨끗하게 거울을 닦아냈다!! 칭찬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울을 바라보던 S언니는


상희 씨, 지난번에 메인 접시에 생선 놓을 때 배가 오른쪽이어야 하는데 등을 오른쪽으로 놓은 것이 있었어. 그리고 상희 씨, 토요일 특식 나갈 때 계란 프라이 노른자가 다 안 익었더라. 토마토 놓은 것도 맘에 안 들었지만 내가 그냥 봐줬어.


라고 말했다. 엥? 갑자기? 기분이 나빴지만, 다음부터 조심하겠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 내가 반장언니 믹스커피를 타려고 하자 S언니는 본인이 하겠다고 컵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을 받아서 반장 언니에게 줬다. 커피를 다 마신 반장 언니는 '커피가 싱겁다 했더니 끝으로 갈수록 달달해지네.'라고 말했다. 내가 와하하하 크게 웃으며 S언니가 뜨거운 물만 넣고 안 저었다고 일렀다. 그러면서 S언니가 가고 싶다는 맛집을 찾아주고, 거기를 갈 수 있는 버스와 길을 찾아줬다. 그다음부터인 것 같다. S언니는 나에게 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네!!라고 예쁘게 말할 때는 뭐라고 하더니 아닌데요?라고 딴지를 걸고 충청도식 눙치기식으로 말을 했더니 대놓고 나를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일은 사라졌다.


대놓고가 사라지고 뒤에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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