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라 쉬어
상희 씨, 우리가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데 6월까지만 해주면 안 될까? 상희 씨 빼달라는 날은 다 빼줄게!
점심식사를 마친 후 쉬는 시간에 반장 언니가 말했다. 영양사가 슬쩍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영양사의 지시겠지. 사실 화요일 빼고는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둘 중 하나 고르라는 소리에 나를 뭘로 보고! 여기 아니면 내가 일할 곳이 없을까 봐 하는 마음도 있었고, 말 나온 김에 쉬겠다는 배짱도 있어 정한 퇴사였다. 연인과의 이별이든 정든 곳과의 이별이든 나는 고민을 몹시 오랫동안 깊이 하는 성격이다. 그러고 나서 정한 것에는 결코 번복하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이곳을 그만두는 것은 다른 곳을 그만둘 때보다 고민도 짧았고, 퇴사수순도 순조로웠다.
13년 다닌 직장에서 퇴사하겠다고 했을 때 면담을 13번 정도는 한 거 같다. 서울에서 본부장님이 직접 내려와서 설득을 하고 내 사수도 몇 번을 찾아왔다. 나중에는 3개월이든 6개월이든 좀 쉬다가 다시 오라는 소리에 왜 이렇게 퇴사가 힘드냐고 성질을 냈었다. 7년 다닌 직장에서 퇴사를 하겠다고 했을 떼 대표님과는 설득과 강요와 협박이 난무한 면담을, 직장동료와는 매일 몇 시간씩 그만두지 말라는 하소연과 설득을 그만둘 때까지 들어야 했다. 후임을 구하지 못했다며 4개월 넘게 붙들고 안 놔주는 상황에 독일에 사는 동생에게 훌쩍 날아가며 퇴사가 마무리되었었다. 퇴사면담은 정말 넌덜머리가 나는 일이다.
조심스럽게 6월까지 만을 부탁하길래 정 많은 최여사는 5월은 괜찮은데 6월은 일정이 있어서 어렵다고 했다. 휴무해야 하는 날을 말해보라고 해서 독일에서 동생이 오기로 한날부터 교육공무원 시험 보는 날(틈틈이 준비하고 있었다-틈틈이 준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과 시험 통과 시 면접일까지 싹 써서 보여줬더니, 그날 다 쉬고 나머지 날은 일을 해달란다. 원하는 휴무일이 많아서 안될 거라 생각했는데 뭐 그럴 거면 내가 화요일에 쉬는 걸 왜 반대한 건가 싶었다. 그렇게 일을 계속했다.
6월 10일 화요일, 독일에서 동생이 한국방문 비행기를 탔다고 연락이 왔고, 지역아동센터에서 진행할 활동지를 만들었고, 문화센터에서 쓴 글을 출판사에 넘기고 가뿐한 마음으로 수업을 가려고 방에서 나오다가 꽝! 침대에 발가락을 찧었다. 으악! 너무너무 아팠지만 수업시간이 가까워오니 얼른 집에서 나갔다. 수업이 끝나고 신발을 신으려고 하니 발가락이 퉁퉁 부어 까맣게 죽어 있었다. 새끼발가락 골절이었다!!
나의 영양실 근무는 6월을 채우지 못하고 이렇게 끝이 났다. 엊그제 영양실에서 혹시 알바라도 할 수 없느냐고 전화가 왔다.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하겠다고 하고 어제 병원에 갔는데, 6주가 지났건만 아직 뼈가 하나도!!! 안 붙었단다. 이로써 내 뼈는 잘 붙지 않는 뼈로 판명이 났으니 2주 후에 다시 병원에 오란다. 속이 상해서 "제가 늙어서 그런가요?"라고 묻자 의사는 "아닙니다. 중년이어서 그렇습니다."했다. 예, 늙은이가 아니라니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란다. 알바고 뭐고 곱게 집에 있으려 그림 도구를 잔뜩 사 왔다. 독서모임에서는 쇼펜하우어에 대해 발표가 예정되어 있으니 책도 읽어야 한다. 딱 발 안 쓰고 하기 좋은 일들이다. 책 읽고 그림 그리고... 살찌고.... 돈 못 벌고....
쉬란다. 더 쉬란다. 만약 4월까지만 아니, 5월까지만 일했다면 발을 안 다쳤을 텐데 싶다. 그래도 영양실 근무는 나쁘지 않았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좋은 경험이었다. 일부러 운동하지 않아도 되었고, 돈도 벌었고,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과의 추억(?)도 생겼고, 새로운 메뉴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그냥 집에서 꽃이나 가꾸고, 마당 풀 뽑고, 포도나무랑 토마토 가지나 솎으면서 쉬련다. 이제 하늘의 뜻을 받들어 휴식에 들어가야겠다.
몇시간 뒤 고용24를 들여다보는 최여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