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증
국장 시절, 전국 회의를 하러 가면 친한 팀장이 나를 보며 매번 놀랬었다. "국장님! 얼굴이 순대색이에요!" 순대색이라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리다. 전국의 국장님들과 만난다고 나름 예쁘게 화장을 하고 왔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얼굴이 똥색이라고 하는 것보다 기분이 나빴더랬다.
지난 주말 잘 먹고 내내 누워있었음에도 거울 속 내 얼굴은 딱 순대껍질 색이었다. 두통을 달고 살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와의 두통과는 느낌이 다른, 묵지근하게 머리를 짓누르며 머릿속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서는 맑은 하늘이 한치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아플 때 잘 먹고 잘 자면 아직 병에서 헤어나지 못했더라도 얼굴색은 부앴는데 거무죽죽 보라둥둥(?) 이상했다.
오늘 아침에 거울을 보니 얼굴색이 한결 나아 보였다. 내가 남편에게 내 얼굴 좀 보라고 하자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못생겼어."라고 말했다. 뭐, 내가 보기에 얼굴색도 나아졌고, 어지럼증과 두통도 나아졌고, 기분도 나아졌고, 중요한 건 나는 예쁘기 때문에 못생겼다는 헛소리는 가뿐하게 무시해 본다.
이석증 치료 병원에 가면 우선 얼굴에 가상현실체험 하는 안경 같은 걸 쓴다. 되도록 눈을 깜빡이지 않고 껌껌하기만 한 앞을 보았다가 몸을 뒤로 옆으로 제쳐가며 눈을 부릅뜬다. 한참을 앉았다 누웠다 하고 나면 현재 나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이 나온다. 이제 돌이 제자리를 잘 잡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뇌에서는 아직 귓돌이 빠져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두통이 있을 수 있단다. 나의 뇌가 나의 상태를 착각할 수 있다니 참으로 신비로운 인체의 세계이다. 그리고 완치라는 개념보다는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한다.
이석증을 조심하려면 피곤하고 힘든 일을 하지 않아야 하고, 몸 쓰는 일을 덜 해야 하고, 무기질과 오메가 3을 섭취해야 하고, 커피, 단것, 밀가루, 떡 등을 먹지 말라고 했다. 인체는 참으로 신비하여서 평소에 잘 먹지도 않은 것이라도 먹지 말라고 하면 미친 듯이 먹고 싶어진다.
어쨌든 나았다고 하니 달달한 카라멜 아이스크림과 설탕과 시나몬가루가 듬뿍 묻은 츄러스를 하나 샀다. 일종의 보상심리였으나 욕심만큼 위장이 따라주지 않아서 다 먹지도 못했다.
얼굴이 순대색에서 살색으로 되돌아오자 사방이 가을로 물들어있음을 느낀다. 내가 안 아파야 세상도 아름답다는 진리를 또 한 번 느끼며 남편에게 슬쩍 떠본다.
나 아픈데 김장하지 말고 남들처럼 사 먹을까?
안돼.
그럴 줄 알았다. 쳇